서완석(61) 양장(洋裝)부문 대한민국 명장은 40년 가까이 입체패턴을 연구하고 있다. 입체패턴을 연구하고 이를 국내에 첫 도입한 남자 모델리스트이다.

 

모델리스트는 디자이너가 구상한 옷의 기본모양(패턴 또는 옷본)을 제작하는 사람이다. 패턴사라고도 한다.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바탕으로 본을 만들어야 한다. 본을 바탕으로 사이즈와 체형을 평면, 즉 도화지에 본을 그려 재단하면 '평면패턴'이고 몸이나 마네킹에 천을 대고 하면 '입체패턴'이다.

입체패턴을 국내에 첫 소개했던 사람은 '클라라 윤'이라는 여성이다. 반도패션(現 LG패션)이 80년대 초 미국에서 영입한 사람이다.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입체패턴을 알렸다. 

서 명장은 남성중 처음으로 입체패턴을 이용한 양장기술을 선보였다. 그는 고품질, 다품종 소량생산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패션에서도 평면패턴보다 입체패턴이 유행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입체패턴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족했고, 평면패턴 방식에 비해 작업시간도 많이 걸려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 일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회의가 들 때가 많았죠. 그러나 참았습니다. 늦둥이로 태어나 아버님이 연로하신데다 외아들이었죠. 포기하면 아버지가 크게 실망하실 것 같아 끝까지 참고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무명으로 살아온 시간이 23년이다.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1997년 제1회 '패션위크' 전시회에 그는 입체패턴을 이용한 작품 10여 점을 출품했다. 세계적 디자이너인 프랑스의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 1876~1975)가 만든 옷을 재현한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은 입체재단을 안 하면 만들 수 없었다. 드레스, 스커트를 이음선 없이 한 판으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패션업계에서는 어려운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국내는 물론 외국에도 입체패턴을 통한 전시작품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입체패턴을 적용한 작품은 어려웠다. 여러 조각을 박음질해 만드는 평면패턴과 달리 입체패턴은 원단 한판으로 만들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입체와 평면을 같이 구사해야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당시 프랑스 기자들이 프랑스 디자이너도 입체패턴 옷을 만들기 어려워 작품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한 벌도 아니고 어떻게 10여 벌을 전시했냐고 놀랐습니다." 

이 전시회 이후 그는 일약 패션업계 스타로 떠올랐다. 23년 간 무명의 설움을 딛고 패션계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없었다면, 단순한 재단사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후 그는 업적을 인정받아 양장 부문 최초로 대한민국 명장(2004년)에 선정됐다.

"세계적 디자이너 되려면 디자인·패턴 동시 구사해야"

서 명장은 1984년 서울 명동에 '입체패턴연구소'를 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곳에서 모델리스트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모델리스트 인기는 아직까지 높지 않다. 

패션을 배우려는 사람 대부분이 디자인만 관심을 갖고 재봉과 스타일을 만드는 모델리스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아직도 패턴사가 기능인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모델리스트들이 우대를 받지만, 국내는 아직 이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다. 

디자이너가 평면에 디자인하면 모델리스트는 재단을 한다. 디자이너 중 재단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 디자이너가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모델리스트가 디자인도 하고 실제 옷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외국은 디자이너가 패턴을 다 구사합니다. 우리 디자이너는 그림만 그립니다. 이 때문에 세계적 디자이너가 나올 수 없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알라이아'라는 프랑스 디자이너는 대학 때 조각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세계적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아프리카 튀니지 출신이며, 그가 디자인한 원피스 한 벌이 500만원을 넘는다. 그는 디자인 뿐 아니라 직접 재단까지 한다.

"우리보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아프리카 사람도 세계적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실제 재단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리다보면 모방하는 경우가 많죠. 일본은 세계적 디자이너를 몇 명 배출했습니다. 우리 패션업계도 점점 희망을 갖는 부분은 지금 학생들이 디자인과 패턴을 동시에 배우려는 경향이 많다는 것입니다." 

서 명장은 요즘 젊은 친구들이 평면과 패턴을 동시에 공부하고 있어, 우리 패션 분야의 미래가 밝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후학 양성에 주력할 것" 

서 명장은 앞으로 후학 양성에 더 공을 들일 계획이다. "몇 년 전까지 학교를 설립하는 데 많은 관심을 뒀습니다. 패턴을 배우는 학생들을 양성하는 것이 꿈입니다. 패턴사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 디자이너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패션사가 나올 수 있도록 제가 알고 있는 기술을 최대한 많이 전수하겠습니다."

그는 70~80년대 우리나라 복식문화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 현재 그 시대 옷 재현작업을 하고 있다. 70~80년대 옷을 재현해 대한민국 복식문화에 귀중한 자료를 남기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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