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응급의학회 유치 및 개최로 대한응급의학회 국제화에 기여한국 중증도 분류체계(KTAS) 도입해 응급환자 체계적으로 분류

 

대한응급의학회의 국제화

 

- 세계응급의학회(ICEM) 대회 유치

 

20141029일 미국 시카고.

2019년 세계응급의학회 개최지 선정을 위한 세계응급의학연맹(IFEM) 이사회가 열리고 있었다. 대한민국과 인도, 터키, 아르헨티나 등 4개 국가 응급의학 대표가 나서 열띤 대회 유치 경쟁을 벌였다.

세계응급의학회는 응급의학과 의사와 전문가들이 참가해 최신 응급의학 정보를 공유하고 주요 응급처치에 대해 논의하는 응급의학 분야 최대 국제규모, 최고 권위의 학회로 대회 개최는 곧 그 나라 응급의학 수준이 꽤 올라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각 나라 대표들은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한국 대표로 발표에 나선 이강현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에게도 대회 유치는 절실했다. 그는 IFEM 이사들에게 한국의 장점을 조목조목 내세우며 대회 개최 최적지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존경하는 IFEM 이사 여러분!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응급의학회 대회를 개최할 만큼 충분히 성장했습니다. 대회를 치른 경험도 갖추고 있습니다. 아시아응급의학회와 환태평양응급의학회를 개최한 경험이 있습니다. 2019년 세계응급의학회 개최지는 대한민국이 가장 적합한 곳입니다.”

이강현은 큰 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했던 경험을 내세우며 이사들을 설득해나갔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2009년 아시아응급의학회, 2012년과 2014년에 환태평양응급의학회를 개최한 경험이 있었다. 대한민국 응급의학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굳건한 토대가 다져졌다는 의미였다. 더욱이 이강현은 아시아응급의학회와 환태평양응급의학회 때 학술위원장 등 임원으로 활동해 대회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세계응급의학회 개최도 잘 치러낼 자신이 있었다.

ICEM 대회 유치는 쉽지 않다. 평소 꾸준히 이사들을 관리하고, 대회 개최 여건을 충분히 갖추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알려야만 한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해나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강현은 우선 IFEM에 대한민국의 응급의학의 현실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었다. 환태평양응급의학회를 개최했을 때 일부러 유럽 대표들을 강사로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 대한민국에 친근감을 느끼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먹혀들었다. 유럽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IFEM 이사회에 직접 나서 한국 학회를 가보니까 잘하고 있더라며 지지 발언까지 이어졌다.

게다가 이강현이 IFEM 이사로 등재되어 있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그는 이사회가 열리기 4개월 전인 20146월 아시아지역 대표이사로 뽑혔다. IFEM 이사회는 회장과 부회장 등 회장단 4명과 6개 대륙별 대표이사 1명씩 전체 10명의 이사진으로 구성된다.

소수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 표가 당락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10명의 이사가 투표에 참여해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회원국을 대회 개최지로 선정한다. 이강현은 IFEM의 아시아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이사회 멤버들과 유대관계를 계속 맺어왔고, 그들에게 평소 우리 상황을 설명할 기회가 많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대한민국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IFEM은 각국 대표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은 뒤 2019년 대회 개최지로 대한민국을 선정한다. 학회 창립 25년 역사 속에 대한민국 응급의학회가 세계응급의학회를 유치해 의료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 ICEM 대회 의미 및 성과

 

2019년 세계응급의학회 학술대회(ICEM 2019)10월 서울 코엑스에서 72개국 2,700여 명의 응급의료종사자가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ICEM 대회 사상 역대 최대 규모였다. 194개의 강연을 비롯해 저체온 치료, 에크모 치료 등 소생의학과 중증응급의학 분야 등 1,072개의 연구과제 발표 등이 있었다.

‘ICEM 2019’는 대한민국이 응급의료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임을 다시 한번 과시하는, 응급의료의 국제화를 앞당긴 중요한 대회였다. 대한응급의학회 회원들이 국제적인 네트워크 강화와 이를 통한 세계응급의학계에서의 응급의료인들, 특히 젊은 응급의료인들의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대회의 큰 성과였다.

대한응급의학회 창립 30주년인 2019, 대한민국에서 국제학회를 유치해 학회의 위상도 더욱 높아졌다. 30년 전 우리의 응급의료는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응급환자가 대거 발생한 현장은 환자 중증도 분류체계나 재난 의료 지원체계 등이 없었다. 이로 인해 살 수 있는 사람까지도 죽어나가는 일이 허다했다.

후진적인 사고를 혹독하게 경험한 대한민국은 응급의료 발전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선진 응급의료시스템을 하나하나 도입하면서 응급의학을 선진국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한강의 기적이 응급의학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이강현은 대회 유치의 주역임은 물론 ICEM 2019의 조직위원장으로 학술대회를 총책임지며 한국의 응급의료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그는 한국 응급의학 위상 확립과 국제적 네트워킹 구축 저개발국가 응급의료인 초청 북한 응급의료인과의 교류 등 세 가지 주안점을 두고 대회를 치렀다.

첫째, 한국의 응급의학이 세계응급의학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대한민국 응급의료가 더 발전하려면 국내에서만 머물면 안 된다. 세계 속의 응급의학으로 자리매김이 필요했고, 응급의학 젊은 회원들이 국제적인 학문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회를 통해 응급의료 분야 중 많은 영역에서 국제 네트워크가 늘어나고, 세계적인 리더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랐다.

둘째, 응급의학의 성공 경험을 저개발국, 개발도상국의 응급의료인들에게 알려주고 공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만큼 응급의학이 빠른 시기에 선진국 수준까지 올라간 나라는 없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응급의료의 성공모델을 해외로 확산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에서는 학회를 오고 싶어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참여가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2019년 세계응급의학회조직위원회는 이들이 학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우간다, 네팔 등 응급의료인 30여 명에게 항공 비용과 체류 비용을 무료로 제공했다. 그들이 선진 의료 기술을 배운 뒤 자기 나라의 응급의료 발전에 앞장서주기를 바랐다.

셋째, 학회는 북한 응급의료인들을 초청해 응급의료 발전을 함께 모색하려 했다. 그러나 대한응급의학회와 카운터파트가 될 단체가 북한에 없어 많은 노력에도 결국 무산됐다. 조직위원회는 통일부, 세계적십자사, UN, 민족화해 범국민협의회 등 다양한 통로로 문을 두드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회 때 북한과 함께 못했지만, 앞으로 북한 응급의료의 발전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학회의 과제로 남겨졌다.

세계응급의학회의 대한민국 개최는 응급의료인, 특히 젊은 응급의료인들의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 영문학술저널 CEEM 창간

 

1990년 대한응급의학회 학회지가 창간되면서 학술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러나 국제화 시대에 국제적인 학술교류를 위해서는 영문학회지의 발행이 불가피했다. 외국인들과 공유할 영어로 된 대한응급의학회 논문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당시 학문의 세계화도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영문으로 된 학회지를 만들어 학문의 국제화에 보조를 맞출 계획이었다.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이었던 이강현은 학회지 SCI 진입을 위해 TFT을 구성한다. 구성한 후 학회는 2014년에 영문학회지 CEEM(Clinical and Experimental Emergency Medicine)을 발간한다. 영문학회지를 만든 건 SCI 학회지로 발전해 국내 우수논문을 영문으로 작성, 세계를 겨냥한 양질의 논문을 발굴하자는 취지였다. 또 영문학회지 활성화를 통해 국내 좋은 논문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도 있었다.

 

- 저개발국가 응급의료인 교육

 

6.25 전쟁 이후 함흥과 원산 지역 사람들이 원주로 피난을 많이 왔지만, 원주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고 결핵과 나병 환자가 많았다. 이를 가엾게 여긴 캐나다 선교사 머레이 박사가 1959년 원주에 50병상의 병원을 설립한다. 이 병원이 오늘날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이강현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이 외국의 원조로 이만큼 발전할 수 있게 된 걸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개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남짓의 저개발국가에서 반세기 만에 3만 달러까지 올라서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폐허에서 반세기 만에 선진국에 버금가는 나라로 바뀐 경험은 흔치 않았다.

의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설립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이강현은 우리가 받은 만큼 저개발국가와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 가진 자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짧은 기간에 선진 응급의학 수준으로 뛰어오른 대한민국의 응급의료를 잘 살지 못하는 나라에 전해주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강현은 2011년부터 우간다, 콩고공화국, 탄자니아, 미얀마, 스리랑카 등 개발도상국에 응급의료인 교육을 시작한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등과 함께 우리의 선진 응급의료 기술을 알려줬다. 이들을 가르치면 그 나라의 응급의학을 발전시켜 전 세계 응급의학이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국 중증도 분류체계(KTAS) 도입

 

응급의학 종사자들에게 환자 상태에 따른 중증도 분류는 아주 중요하다. 중증도 분류에 따라 생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응급환자가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중증도에 따라 치료의 우선순위와 구역을 나누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구석에서 환자가 죽어간다. 이 때문에 병원에서는 나름대로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한다.

병원마다 달랐지만, 응급의학 초창기에는 간단히 3, 4단계로 중증도를 분류했다. 중증도 분류 명칭도 병원마다 달랐다. 모두 제각각이었고, 제대로 표준화된 중증도 분류가 없었다.

그러나 응급의학이 발전하면서 모든 병원에 일률적으로 통용되고 응급환자에 체계적으로 적용할 표준화된 중증도 분류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대한응급의학회는 2012년에 중증도 분류체계 표준화 작업을 시작한다. 이강현이 연구 책임자를 맡으며 본격적인 중증도 분류체계 표준화 작업에 나섰다.

이강현이 연구를 할 당시 트리아지(Triage·응급환자분류) 체계는 주로 캐나다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CTAS(Canadian Triage and Acuity Scale)와 미국의 ESI(Emergency Severity Index) 위주였다. 주로 두 나라 트리아지 체계를 기반으로 각자 자기 나라에 맞는 중증도 분류체계를 만들었다.

국내 응급의료계에서는 CTAS 기반이 우리와 더 맞는 체계로 생각해 이를 바탕으로 한국형 중증도 분류체계를 만들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 같은 의견이 대세를 이루자 이강현은 캐나다 CTAS를 기반으로 우리의 중증도 분류체계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CTAS를 기반으로 중증도 분류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캐나다 응급의학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캐나다 응급의학회에서 중증도 분류체계를 책임지고 있는 에드먼턴(Edmonton)에 있는 앨버타 대학의 Michael J. Bullard 교수에게 절차를 묻고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강현은 Bullard 교수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한국형 응급의료 분류체계의 기초를 만들어나간다. 이후 캐나다 응급의학회의 허가를 받기 위해 2012년 겨울 이강현은 앨버타 대학으로 Bullard 교수를 찾아가 협조를 구한다.

교수님, 우리가 CTAS를 기반으로 트리아지 체제를 만들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캐나다 응급의학회에서 CTAS를 활용해도 좋다는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승인을 받으려면 다른 조건은 있나요?”

계약금으로 1,000달러만 내시면 됩니다.”

? 1,000달러요?”

, 그렇습니다. 허허.”

이강현은 1,000달러의 계약금만 내는 조건으로 캐나다 응급의학회와 MOU를 체결하고 돌아왔다. 이후 CTAS를 기반으로 우리 응급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한 한국형 중증도 분류체계를 만들어 그 이름을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로 정했다.

그러나 어렵게 한국형 중증도 분류체계를 만들었지만, 중증도 분류를 할 인력이 필요한데 수가를 인정받지 못해 일선 병원에서 활용에 어려움이 있어 사용이 쉽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중증도 분류체계를 행위수가로 인정해주지 않아서였다. 당시 행위 수가는 진단과 치료 위주의 행위만 행위수가로 인정했다.

불합리한 규정을 바꿔줄 것을 복지부에 계속 요구했다. 일선 병원이 KTAS를 통해 응급환자를 분류해야 응급의료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걸 강조했다. KTAS 분류작업도 행위수가로 인정해달라는 의미였다. 그러한 요구가 이어지면서 결국 복지부는 대한응급의학회 등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증도 분류를 위한 의료인의 활동을 행위수가에 반영하기에 이르렀다.

2014KTAS 분류가 행위수가로 인정되면서 각 병원 응급실에는 KTAS를 도입했고, 응급환자 분류가 훨씬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2011년 8월 29일 첫 닥터헬기가 김포공항에 입고되어 검수시 보건복지부 담당 사무관과 함께
2011년 8월 29일 첫 닥터헬기가 김포공항에 입고되어 검수시 보건복지부 담당 사무관과 함께

 

닥터헬기 도입 등 이송체계 고도화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강원도에는 지역 내 거리가 멀어 이송이 쉽지 않았다. 영월, 정선, 태백, 인제, 평창 등에서 중증환자가 발생하면 제대로 이송되지 못해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일이 허다했다. 환자가 무사히 응급실에 도착해도 초기처치가 늦어져 사망하는 일도 많았다. 그렇다고 곳곳에 응급환자를 치료할 병원을 짓는다는 건 현실과 맞지 않았다. 이송체계를 개선하는 방법 외에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다.

이강현은 닥터헬기를 먼저 도입한 일본 나리타 공항 옆 일본대학 호쿠소 병원을 자주 찾았다. 이곳은 2001년에 닥터헬기를 들여와 환자들을 후송하고 치료해왔던 곳이다. 이곳을 보고 난 뒤 이강현은 산이 많은 산악지역인 강원도에 환자수송용 헬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닥터헬기 도입이 현재의 응급의료 이송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꿀 방법이라며 보건복지부에 닥터헬기 도입을 공식적으로 제안한다.

그러나 복지부에서 정책을 마련하고 예산까지 반영하기는 쉽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이 확보되어야 하고, 국회에서 최종 예산이 통과되어야만 한다. 이강현은 닥터헬기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기재부와 국회를 방문해 닥터헬기 도입을 촉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해 닥터헬기를 시찰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118월 마침내 닥터헬기가 국내에도 도입됐다.

그러나 초기 닥터헬기 운영을 맡았던 국내 대형 운항사의 소극적인 비행으로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항공응급의료서비스는 정부와 운항사 및 응급의료계가 협조를 잘해야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데,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2015년 한국항공응급의료협회장이 된 이강현은 평소 느끼고 있었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닥터헬기 운영병원과 헬기운항 회사, 닥터헬기 운영관리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협회에서 정부에 다각적으로 건의하기 시작했다. 건의는 점점 받아들여졌고, 닥터헬기 운항이 순조롭게 진행되며 항공응급의료의 질적인 도약이 이루어졌다.

 

메르스 사태 이후 응급실 구조개혁

 

2015년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으로 인해 전체 메르스 환자(186)의 절반에 달하는 85명의 감염환자가 나왔다. ‘슈퍼전파자’ 14번 환자가 응급실에 머물다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들 사이로 감염이 삽시간에 퍼진 것이다. 이로 인해 병원 내 주요 병동이 한동안 폐쇄됐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이 메르스 전파의 주요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이다. 메르스가 응급실에서 빠르게 퍼지면서 186명이 감염되고 38명이 사망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이었던 이강현은 터질 것이 터졌다고 생각했다. 응급실이 혼란한 데다 체류 시간도 길고, 과밀화되어 있으며, 응급실에 칸막이도 없어 메르스 전파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밀폐된 공간에서 메르스가 들어오면 무조건 감염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대학병원 응급실의 대부분은 과밀화와 응급실 체류 시간이 길어 메르스와 같은 감염질환에 매우 취약한 환경이었다. 이러한 취약한 환경으로 메르스 전파가 응급실을 중심으로 쉽게 전파될 수 있었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대한민국 응급실의 환경은 너무 열악했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응급실 대부분이 1인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응급실은 한꺼번에 환자들이 몰리고 여러 명이 함께 공간을 사용하므로 그 안에 감염환자가 있으면 금방 전파될 위험성이 컸다. 응급실이 각종 감염에 노출되어 있었고 취약한 상태였다. 메르스가 응급실을 위주로 널리 퍼진 것은 주로 환경 문제 때문이었다. 응급실에 환자 안전에 치명적인 문제가 많았다.

메르스가 발생하자 이강현은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으로서 정부가 주최한 종합상황 및 민간합동상황, 민간합동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강현은 응급실 환경 문제를 개선하는 것 만이 현재의 전염병을 확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생각했다. 특히 전염병에 감염된 환자가 격리된 공간에서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음압실을 확장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러나 병원 공간을 확장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병원 공간은 좁은데 음압실과 같은 1인실을 무턱대고 만드는 게 병원 경영진으로서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염병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의료계의 대응방안은 순식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메르스 이후 응급실 개선의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였다. 열악한 응급실의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환자 베드 공간과 음압 공간, 격리실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음압실과 격리실이 갖추진 것은 그때 이후부터다. 메르스 경험을 하면서 응급실 내 감염방지를 위한 음압실 설치와 격리병실을 만들고 다인실보다 1~2인실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다인실에도 가능한 병상 간 간격을 넓혀 감염 예방에 주력했다.

메르스 이후 전염병을 교훈 삼아 응급실의 환경이 제도적으로 개선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만약 메르스 사태 때 응급실에 이와 같은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현재의 코로나19의 감염 확산은 물론, 치료에도 어려움이 훨씬 컸을 것이다.

 

지역 응급의료체계 구축

 

2012122일 낮 1210분경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국도 44호선에서 카니발 승용차가 도로 우측 과속카메라 기둥을 들이받았다. 승용차 안에 타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 후보 보좌관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겼지만, 보좌관은 사망했다. ‘the Right Patient in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적절한 환자를,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병원으로)’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숨진 것이다. 처음부터 헬기로 수술 가능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면 살 가능성도 있었다. 지역병원 간 부실한 이송체계, 병원 간 정보전송시스템 미비 등이 영향이 미쳤다.

이를 교훈 삼아 이강현은 산악지역이 많은 강원도에서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하게 응급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중앙응급의료센터와 함께 지역 응급의료체계 거버넌스 구축에 나선다. 환자가 발생했을 때 지역 거버넌스 체계의 지역외상체계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지역 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어느 병원에서 어떤 수술을 할 수 있고, 어디로 환자를 이송해야 할지 등 지역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해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중증응급 질환은 배후진료체계가 중요하다. 골든타임 내 중증외상이나 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질병들을 빨리 치료하기 위해서는 배후진료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응급의료체계 안에서 외상치료, 심뇌혈관질환 등 포괄적으로 연계하고 이를 지역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상은 짧은 시간에 많은 전문분야가 필요하므로 사전에 충분히 준비되고, 상호 협력(Co-operation)이 잘 이루어져야 성공적으로 작동한다. 이강현은 지역 특성을 살려 병원, 지자체, 소방관계자들을 연계한 지역 내 전달체계를 구축하려고 했다. 응급의료체계 틀 안에서 소방과 지방자치단체, 응급의료, 외상 등을 포괄적으로 담당할 주요 관리 체계를 만들어나갔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을 중심으로 2018년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강원 외상체계 구축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서 2021년부터는 제주도와 인천지역으로까지 확대됐다.

 

자동차 사고 후 환자 손상 예측 및 예방 연구

 

연세대 자동차의과학연구소는 2019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유일한 자동차의학 관련 연구소다. 이강현은 이곳 연구소를 만들고 소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연구소가 들어서기 10년 전부터 자동차 실사고 관련 자료를 계속 모으며 DB 구축작업을 벌여왔다. ‘자동차 사고-인체 상해 데이터베이스 및 이에 대한 구축을 계속하고 사고 현장과 차량 및 인체 손상의 실사고를 조사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연구소는 사고가 나면 어떻게 다치고, 예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응급의학의 영역을 자동차의학 분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자동차의과학 연구소의 최종 목표는 사고가 나는 순간 자동으로 알고리즘을 분석해 중증 여부를 판단하고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병원으로 후송해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과 교통사고 인체 손상 기전을 분석해 사고에 의한 인체 손상 예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자동차 사고 후 환자 손상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제조사들과 연구 프로젝트를 계속할 계획이다.

교통사고에 의한 외상은 물리적 외력에 의해 발생하고 그 물리적 외력은 속도변화량과 평균 가속도에 의해 결정되므로 외상의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교통사고 시 외상의 발생과 중증 정도를 빠르게 예측하면 그만큼 적절하고 빠르게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강현 교수 프로필

 

학력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의학과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 석사

아주대학교 대학원 의학 박사

 

경력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실장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센터 소장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

국제응급의학연맹(IFEM) 아시아지역 대표이사

대한외상학회 회장

한국항공응급의료협회 회장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학장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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