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민 경희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대한응급의학의사회(회장 이형민)124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응급의학과로 개원하기라는 주제로 온라인 개원 심포지엄을 갖는다. 이날 심포지엄은 제1부 응급의학과로 개원하기, 2부 다양한 개원의 실제, 3부 알면 간단한 개원실무 등 개원에 필요한 정보 등을 알려준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이형민 교수의 응급의학과와 워킹그룹 (Working Group Practice of Emergency Medicine)’이라는 주제발표문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

 

1. 서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는 유명한 말은 고 이승만 대통령이 귀국연설에서 한 말이 아니라 사실은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단합을 촉구했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한 말이었다고 한다. 정치적인 색깔이 다분한 이 구호는 전체주의와 민족주의, 이익집단을 먼저 떠올리게 하지만, 혼자서는 적절히 기능할 수 없고, 집단운영과 교대근무가 유일한 취업방식인 응급의학과의 입장에서는 남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많은 응급실들이 구성원들간의 불화 또는 병원장이나 경영진의 노련한 각개격파에 속수무책으로 망가지는 것을 무수히 많이 보아온 우리들에게는 뭉치지 못하면 바로 무너지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자신을 지키지 못할 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힘이 있고 규모가 있는 조직에 몸을 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그 조직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개인은 그 안에서 역량에 따라 조직에 봉사하며 서로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의사가 되면 가입되는 의사협회나 전문의가 되면 조건 없이 들어가는 학회와 같은 거대 조직들은 개인의 사사로운 처우와 환경을 돌봐주고 챙겨줄 의지도 여력도 없을 뿐더러, 그 조직에 대한 우리의 의무도 회비를 내는 것, 학회에 참석하는 것 이상을 넘기는 힘들다. 결국 이해관계가 동일한 소규모 집단을 이루는 것만이 스스로를 직접적으로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국(醫局)이라 함은 병원에서 일종의 부서의 개념으로 특정과 전문의들의 모임으로 지칭되기도 하는데, 교육수련병원의 교수와 학생(전공의)의 개념을 포함하면 교실(敎室)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의국이나 교실은 단수가 아닌 복수의 개념이며 단결의 상징이고 의사로써 사회생활에 고향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좋게 보자면 정으로 뭉쳐진 선후배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로 이뤄지지만 일부 배타적이고 비민주적인 집단이기도 하다.

현재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취업에 있어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가 의국 출신의 선배나 동기가 병원에서 필요한 인력을 추천하거나 알선하는 것이다. 병원의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비용 없이 필요한 인력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기존의 인력들에게는 모르는 사람이 의국에 합류하여 생길 수 있는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비교적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2. 현재 우리나라 응급의학 전문의 취업현황

 

초창기에 응급의학과를 만들었던 많은 선배들은 병원을 이동하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 교육수련병원과 대형병원 위주로 시작된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던 병원에 대한 애정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응급의학 전문의에 대한 수요와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근 몇 년은 직장의 이동이 너무나 당연해졌고, 출신과 지역을 막론하고 새로운 팀들이 생기고 없어지는 등 이전과는 많이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장기적인 안정적 취업의 대표격인 대학교수 자리가 전국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르고 신규 발령자리가 고갈되면서 많은 전문의들이 임상교수, 촉탁교수 등 비정규직에 머물면서 많은 자리바꿈이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신규로 문을 연 중대형 병원들에서 진료를 위한 전문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응급실에서 일하던 타과 전문의들이 비교적 수월한 요양병원, 입원전담의 등으로 빠지게 되면서 응급실의 수요가 더욱 증가하게 되었던 때가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응급의학과의 호황이 내부적인 가치의 인정에 따른 것이 아닌 일시적인 외부수급적 요인이라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현재 1,700명에 이르는 응급의학 전문의는 매년 150명 이상씩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증가율을 향후 10년 이상 길게는 20년 가까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앞으로 5년 동안 500개의 추가적인 일자리를 마련해야 하며 10년 동안 1,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수요, 공급을 계산해 본다면 향후 5년 정도는 어떻게든 수요 우위의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는 당연히 공급 우위의 상황으로 바뀔 것이며 다시금 인기와 처우의 하락을 걱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응급의학과 워킹그룹에 대한 논의의 시작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응급의학과 초창기 시절부터 이미 지방의 모 병원이나 일부 지역에서는 동일한 의국출신으로 개별적인 팀으로 병원과 계약하고 팀원들을 관리하는 그룹이 실제로 존재하였고 지금도 비슷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룹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병원과 회사가 계약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병원과 계약을 체결하는 점과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전문적인 관리와 운영이 이뤄지지 못한 점들을 생각해보면 진정한 워킹그룹이 아닌 초기형태의 Semi-working Group이라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에 이런 형태의 취업이 발전하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응급의료시스템의 법적규제와 저수가 때문이다. 하지만 향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발전한 형태의 working group은 언젠가는 만들어지게 되어 있고, 얼마나 제대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3. 미국의 응급의학 전문의 취업형태

 

미국 전공의, 의과대학생 단체인 RSA(Resident Student Association)에서는 응급의학 전문의 취업방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는데,

 

- Democratic group: 의사들끼리 운영과 이익분배에 완전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하는 그룹

- Private group: 1-2명의 소유주(비의료인)가 소수의 병원과 계약하여 운영하는 그룹

- Corporate group: 넓은 지역과 다수의 병원을 책임지는 기업형 운영그룹

- Hospital employee: 개별의사가 병원과 계약하는 방식

- Locum tenens: 몇 주 내지 1년 이내의 시간제 근무자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급성기병원(Urgent Care Clinic)이라던지 군병원,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립병원, 보훈병원 등에서 일하는 방식들도 있긴 하지만 이들은 개업이나 넓은 의미의 개별계약의 범주에 포함된다.

대학교수로써 종신계약을 맺을 수 있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계약들이 1년짜리 단기계약인 미국의 경우에는 의사 개인이 병원과 계약하는 것보다는 회사에 취직하여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는 방식이 응급의학과를 비롯한 다른 모든 과 전문의들에서 오래 전부터 보편적인 취업의 방식이었다. 응급의학 전문의를 고용한 인력회사들이 1980년대부터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에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이는 응급의학과의 특성 상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일하는 것이 유리한 점과 현재까지도 모두 해결되지 못하는 수급의 불균형으로 공급자 우위의 계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초기에 소규모 전문의들로 1-2개 지역사회 병원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던 이런 워킹그룹(전문인력회사)들은 차츰 그 규모와 영역을 넓혀가면서 일부 회사는 수백명에서 1,000명이 넘는 응급의학 전문의를 보유한 넓은 지역, 전국적 체인망을 가진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임상전문의들은 이러한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진료에 임했고, 이런 기업들의 성장은 응급의학과의 성장에 큰 동력이 되었다.

위기는 언제나 내부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미국 응급의학 워킹그룹의 위기와 하락은 내부로부터 시작되었다. 회사의 가장 큰 존재의 이유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워킹그룹의 가장 큰 매출은 병원과의 계약이며 가장 큰 지출은 개인에게 돌아가는 인건비이다. 하지만 그룹에 속한 인력들이 차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전만큼의 생산성을 보이기 힘들고, 인건비의 상승만큼 병원과의 계약에서 수익증가가 둔화되는 시점이 되면서 이 회사들은 성장기를 마감하게 된다. 특히 의사가 오너인 회사들은 일반인이 주인인 회사보다 더 열악한 근무환경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전만큼 폭발적인 성장세는 아니라 하더라도 현재에도 회사에 취직하여 병원에 일하는 방식이 미국의 응급의학 전문의들 사이에는 가장 보편적인 취업의 방법이고 미국의 ACEP이나 AAEM등 주요 학회의 주요스폰서들은 이러한 전국적인 인력회사이며 워킹그룹들이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여러 문제점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고 이런 회사의 피고용인으로 경력을 시작한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대부분 2년 이내에 계약을 해지하고 회사를 바꾼다고 하니, 이러한 대기업으로써의 워킹그룹이 얼마나 더 유지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일종의 미국식 국민보험인 오바마케어는 기존의 메디케이드(의료보호), 메디케어(노인보호) 둘 중 하나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병원에 갈 수조차 없었던 의료제도에서 전국민이 보험에 들어 모두가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만든 훌륭한 제도라 할 수 있지만, 이 내용 중에서 모든 보험이 필수적으로 응급치료에 대한 급여내용을 담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폭발적인 응급실 수요증가를 촉발시키게 된다. 당연히 대형응급실에 더 많은 전문의가 필요하고 많은 전문의들이 개인적으로 병원과 계약하여 취직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가 급성기클리닉(Urgent care)의 전국적인 확산인데, 사실 이전에도 비슷한 형태의 다양한 비중증환자 클리닉들이 존재하긴 하였지만, 메디케이드 확대와 오바마케어 등의 영향으로 개인병원보다는 비싸고 응급실보다는 저렴한 사무실 1인개업 형태의 급성기클리닉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편의점처럼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한국인 의사로 구성된 Urgent care 그룹들도 생겼는데, “For urgent but non life-threatening medical need”를 제공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여러 방식들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민주적인 그룹(Democratic group)인데, 과거 기업형 그룹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방식으로 ACEP, AAEM은 물론 모든 단체들에서 이러한 민주적인 그룹들을 장려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도움과 홍보를 제공하고 있다. 근래에 새롭게 조직되는 많은 응급의학과 그룹들이 이러한 형태로 조직되고 성공적인 사례들이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AAEM에서는 응급의학의 미래확보를 위한 청사진(New vision statement)에서, 응급의학과의 이상적인 근무환경은 진료에 참여하는 전문의들이 공평한 수입의 지분을 가지고, 이에 따른 경영의 책임을 함께 지는 것이며, 전문진료에 대한 보상의 비율은 진료에 참여하는 전문의에 의해 관리되어야 하고, 진료의 행위는 회사가 아닌 의사에 의해 조절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원칙들에 의해 민주적인 그룹(Democratic Group)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를 적극 지지한다고 발표하였고, 홈페이지에 이런 그룹을 만들 때 고려할 사항과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AAEM에 의해 조직된 이런 민주적인 그룹들은 협회가 보증하고 홍보하며 세금과 청구와 관련된 업무에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간단하게 이 민주적인 그룹을 설명하자면, 그룹에 최소한의 대표, 행정지원인력을 포함한 진료의사 그룹을 만들어 동등한 지분을 가지고 병원과 계약을 하게 된다. 이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전 합의된 연간 최소시간을 진료에 참여하여야 하며, 일정기간(2)을 채우게 되면 지분에 대한 권리를 가지게 된다. 총 수입의 일부(50~80%)를 매달 월급으로 받고, 연말에 운영비를 제외한 나머지 수익을 동등하게 분배 받는다. 누적된 적립금과 같은 제도를 통하여 10년 이상 장기간 기여할 경우 진료시간이 줄어도 일정 수익을 보장할 수도 있으며 퇴직금과 같은 제도를 운영할 수도 있다. 그룹의 계약과 대표선출, 임원선출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운영되고 지분에 따라 표결에 참여하거나 대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모든 민주적인 그룹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지분을 가지고 처음 시작한 멤버와 나중에 합류하는 멤버들간의 형평성과 중도탈락자에 대한 보상문제, 스케줄의 형평성문제, 멤버들간의 불화 등 다양한 위험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모든 문제들을 합의해야 하는 소모적인 불편함 등 이를 완전히 해결할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나온 많은 모델들 중에서는 가장 참여자들의 참여의식을 유발하고 적절한 보상이 가능하며 장기적으로 기여한 경우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안정적인 모델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당분간은 미국의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이런 민주적인 그룹을 만드는 데 열중하게 될 것이다.

비록 아직도 많은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는 기업형 취업에 가입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향후 변화와 발전의 방향은 민주적인 그룹이 맞고, 기업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이러한 지분참여의 방법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4. 한국형 민주적인 그룹(Democratic group)은 가능할 것인가?

 

대부분의 우리나라 의사들은 개인이 병원과 계약을 맺는다. 회사의 소속으로 병원과 계약을 하는 형태는 아직까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헤드헌터(HR)들을 통한 취업이나 광고란을 도배하고 있는 의료부 정도가 비슷한 개념일 뿐이다. 응급의학과의 경우도 선후배를 통한 인맥취직을 제외한다면 메디게이트나 카페 취업게시판을 이용한 취업이 전부이다.

개인과 병원의 협상은 언제나 병원에는 갑, 개인에게 을의 위치를 강요한다. 본인이 원하는 요구조건(급여, 근무시간, 스케줄 등)을 모두 성사시키기는 쉽지 않으며, 그마저 기존근무자의 희생이나 양보가 필요하다. 응급의학과의 가장 큰 장점인 유연한 근무스케줄은 요원한 일이며, 특정 병원에 전속(Full Time)으로 근무하는 방법만이 현재 취업의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병원과의 입장에서 전문의 개인이 을의 위치이기 때문에 병원의 요구사항을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 전문가로써 소신 있는 진료보다는 병원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입원장려와 불필요한 검사진행, 야간에 병동 및 중환자실 커버, 회의와 평가 행정업무의 추가적인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뭔가 불합리한 일을 해결하거나 처우, 환경개선을 주장하면 개인의 의견으로 치부되고 입장이 다른 과장들을 설득하는데 힘이 들며, 병원 경영진의 각개전술에 당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모든 예측 가능한 일들을 감안해서 형식적인 계약서가 아닌 몇 십 페이지에 이르는 사안별 초정밀 계약서를 작성한다면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겠지만 이는 현재 상황으로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동일할 수 없으며, 나 혼자만 편할 수 없고, 나의 행동이나 선택이 함께 일하는 남들에게 피해를 줄 소지가 있기 때문에 개인의 개별적인 계약을 모든 구성원이 만족하는 개별계약으로 조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개인마다 다양한 요구들이 있다. 이는 삶의 주기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미혼자와 기혼자가 원하는 근무형태가 다르고, 남자와 여자가 선호하는 방식이 다르다. 자녀의 나이대와 삶의 방식에 따라서 야간근무를 선호할 수도 있고 주중 또는 주말근무를 선호할 수도 있다. 환자의 진료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경영이나 행정, 운영에 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함께 일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혼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많은 근무시간을 일하며 높은 급여를 받기 원하는 사람이 있고 적은 시간을 일하며 본인의 여유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사람도 있다. 출산과 육아와 관련하며 최소한의 시간을 일하면서 자녀와 시간을 보내고 싶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인 부담으로 야간이나 장시간의 근무보다는 짧은 시간 일하면서 최대한 나이가 들도록 일하고 싶은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취업형태와 의료상황은 이 모든 개인의 선택과 개성을 무시한, 전속전문의 이외에는 취업의 방법이 전무하다. 이러한 개인과 병원의 전속계약(Full Time Contract)은 결과적으로 개인을 절대적인 을의 위치로 끌어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응급의학 전문의 신규취업시장은 불붙었지만, 그 이면에서 나이든 전문의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였고, 신규전문의에 비해 높은 급여와 낮은 생산성을 보이는 나이든 전문의들에 대한 향후 기피현상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저렴하고 생산성이 높은 신규전문의들로 취업시장이 재편되어 가면서 처우와 근무환경은 차츰 나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로서 직업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경험자를 우대하고 그 경험에 대하여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인식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전문의로서 10년 이상의 응급센터에서 진료와 운영의 경험은 신규전문의의 체력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진료결과를 내는 것만이 대부분 병원들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에 대한 배려와 존중보다는 보다 싸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자가 취업시장에서 우선대상인 것이다.

많은 전문의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전처럼 전속(Full Time)으로 일하는 것에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행정이나 운영, 연구직으로의 전환은 한정된 자리 때문에 모두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급여가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고 조금 더 편한 자리를 찾는 많은 선배나 동료들을 보면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준비가 없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나이가 들어가는 전문의들이 정말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생각된다. 외래진료나 개업을 기본으로 하는 진료과의 경우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생산성이 크게 좌우되지 않을 수 있으나 응급센터에서 야간당직을 기본으로 하는 응급의학과의 경우는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개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개업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밀어내기식의 개업은 성공의 가능성이 적고 개인의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민주적인 그룹(working group)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아직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면허신고와 관련해서, 상근 또는 비상근인력이 아닌 기타인력으로 신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행인 것은 2015년 차등수가제가 폐지되면서 기타인력으로써 근무하게 되었을 때 보험청구상의 불이익은 없어졌다고 하겠다. 2011년 의료인의 복수병원 진료허용에 의하여 의사들이 여러 병원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지만, 전속전문의(종합병원), 지도전문의(교육수련병원)는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물론 응급의학과는 종합병원의 필수과목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전속전문의의 규정은 해당이 없지만 300여 명의 교육수련병원 지도전문의들에게는 아직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응급의료기관 평가에 전담전문의라는 법에도 없는 규정을 바탕으로 평가점수에 불이익을 주고 있어, 이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

그룹으로 병원과 협상할 때 병원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안정적인 인력수급이라고 하겠고, 개인이 그룹의 일원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 역시 안정적인 직업의 유지일 것이다. 그러나 단점은 병원의 입장에서도 개별 계약시보다 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개인의 입장에서는 직접계약보다 적은 수입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연간 2만명이 내원하는 응급실을 가정해 본다면, 원칙적으로 계산한다면 7.3FTE(Full Time Equivalent) 최소 8명 이상이 진료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병원장의 입장으로는 조금 더 주고 5-6명으로 운영하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물론 이런 운영은 시간이 지나면서 만족하지 못하는 개별전문의의 이탈을 불러오겠지만 신규취업자가 원활히 공급된다는 가정에서는 병원에서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단적인 가정으로 비용절감을 위해서 그룹 구성원 중 오너가 선호하는 1-2명의 전문의에서 현재 그룹의 조건보다 조금 더 주고 개별계약으로 빼내갈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

그룹의 운영을 위해서는 행정적인 업무, 보험, 세금 등 신경 써야 할 여러 사소한 문제들이 생길 가능성이 많으며 이는 비용이 드는 문제이다. 병원과의 계약총액에서 운영비를 뺀 금액이 실제로 구성원들이 가져갈 수 있는 돈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계약과 동일한 총액계약을 맺었다 하더라도 본인이 가져가는 돈은 10-20%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룹회사의 입장에서는 참여자들의 4대보험과 의료사고에 대한 보험을 감당해야 한다. 월급생활자로 내는 세금에 비해서는 법인이나 개인사업자가 다소 유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절세의 방법은 비용처리가 쉬운 제조업이나 도소매업과는 달리 비용처리가 쉽지 않으며 여기에 대한 많은 고려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런 그룹이 협상하고 일할 수 있는 수요 즉 대상병원이 존재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하겠다. 현재 우리나라는 40개의 권역센터, 110여 개의 지역응급센터, 230개의 지역응급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역응급센터 이상은 이미 모든 응급센터에서 응급의학 전문의가 취직하여 진료하고 있다. 지역기관 중에서 100여 개의 응급실에는 아직 응급의학 전문의가 없는데, 취약지 80여 곳을 제외한다면 그리 많은 여유분이라 하기 어렵다. 또한 현재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지역센터와 기관규정에 응급의학 전문의 강제규정이 없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타과 전문의를 운영하는 병원들에서 비용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응급의학 전문의를 그룹으로 운영해야 할 이유와 대의명분이 부족하다.

 

5. 한국형 워킹그룹모델(Working group model)에 대한 제안

 

앞서 살펴본 여러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워킹그룹으로의 전환은 향후 응급의학과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 될 것이다. 이는 비슷한 응급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과거 응급의학과 설립 20년이 지나면서 워킹그룹이 발전하고 40년에 이르면서 민주적인 그룹들이 생겨난 역사를 봐도 짐작이 가능하며, 우리는 단지 제반 여건이 성숙하지 못하여 비슷한 형태의 워킹그룹이 만들어지지 못했던 것일 뿐 이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은 내부적으로 이미 성숙했다고 보여진다.

개인기업형 워킹그룹(Private group)이나 기업형 워킹그룹(Corporate group)은 현실적으로 멀었고, 시장의 규모도 현재로써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완전한 형태의 민주적인 그룹(Democratic group)이 실현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룹과 계약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병원들과 그룹에 전속된 전문의 일원으로 일하겠다는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모두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중간 형태의 시도들이 필요한데, 여기에 개인적으로 단기간에 실현 가능한 몇 가지 한국형 워킹그룹의 모델을 소개하고자 한다.

 

1) Part time model(Partial time model)

 

일한 시간만큼 수익을 얻는 것은 모든 노동자에게 기본이다. 많은 수익이 필요한 사람은 더 많은 시간 일하고, 수익보다 개인시간이 필요한 사람은 적은 시간 일할 수 있는 직업환경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는 전속으로 모든 시간 일해야만 그에 따른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편한 일자리, 환자가 적은 곳이 최선의 선택이다. 파트타임 근무가 가능해진다면 개인의 삶의 주기에 맞추어 보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진다. 임신, 육아, 여행, 휴가, 안식년, 여가생활과 같은 개인에게 의미가 있는 것들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 물론 파트타임만으로 개인의 수익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자리 기회들이 충분히 제공된다는 가정에서 가능할 것이다. 워킹그룹은 개별 병원에서 소속 전문의들의 휴가나 결원, 환자과밀화 해소 등 응급의학전문의가 부분적으로 필요한 병원과 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른 관리와 지원을 담당하는 모델이다. 예를 들면, 특정 병원의 전속전문의들의 휴가기간에 대한 부분계약, 또는 연휴나 공휴일에 대한 계약, 전문의 결원에 대한 충원시까지 계약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모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간 당 진료강도와 표준급여에 대한 기준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2) Collaborate group model

 

기존의 인력이 없는 병원에 신규로 그룹으로 전체가 계약한다는 건 쉽지 않다. 결국 기존에 일하고 있던 인력들과 함께 추가로 들어가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데, 개인이 그 병원과 전속으로 계약하는 것보다 그룹차원의 접근이 더 쉽게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시골에 있는 A병원이 현재 3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2명을 추가로 구인하고 있고 다른 지역의 B병원이 5명이 근무하다가 1명이 나가서 교체중원을 원한다 가정하면, 각각의 병원이 새로운 2명과 1명을 구하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응급의학 전문의 입장에서도 가족이 전체가 이사를 가거나 장거리 출퇴근이 부담스러워 전속으로 계약하기 망설일 수 있다. 여기서 그룹이 그 3명의 일자리에 해당하는 시간을 두 병원과 계약하고 참여를 원하는 그룹소속 여러 명의 전문의가 그 자리를 번갈아 책임진다면 서로에 필요한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취약지나 전문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의 경우는 안정적인 공급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참여하는 전문의에게도 거리와 환경의 부담을 덜 수 있고, 본인의 참여시간을 조절하여 계획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병원경영의 입장에서는 전속인력 증원의 부담을 덜 수 있고, 계약에 따라 증원과 감원이 자유롭기 때문에 탄력적인 인력운용이 가능할 수 있다.

 

3) Opening clinic model

 

그룹에 참여하는 전문의들에게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공급하는 방안으로 공동개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응급의학이라는 전문성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고민해본다면 Urgent care clinic방식의 개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시간 당 생산성이 100-150달러(Urgent care 기준)라고 하는 미국의 현실과 1인 당 초진 15,000(재진 10,000)인 우리의 현실이 동일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투자로(ex. 직원1) 검사와 고급시술을 제외한 최소단위 사무실 개업 형태인 Urgent care도 공동개업 또는 프랜차이즈 영업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응급센터에 내원하는 환자 중 많은 수에서 야간이나 주변에 마땅히 갈 병원이 없어서 큰 병원 응급실로 어쩔 수 없이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환자들(감기, 복통, 통증 등)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진찰과 단순처방, 열상봉합 등을 제공하는 클리닉을 공동으로 운영하여 응급센터 근무와 병행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참여의 시간에 따른 수익분배 방식으로 운영하며, 개업의 장점과 응급센터 근무의 장점을 결합한 방식으로 홀로 개업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그룹의 수입원을 다각화하며 다양한 개인스케줄 관리가 가능하다.

 

4) Job Sharing model

 

정해진 일자리를 그 수보다 많은 전문의가 나누어 수행하는 방법으로 개별 병원과 계약하여 운영하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의 워킹그룹이라 칭하기는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쉬운 방법에 속한다. 예를 들면, 1개의 Job position2명의 전문의가 돌아가면서 수행하면 1년의 절반만 근무하며 절반의 급여를 받게 된다. 이전에 기러기아빠로 자녀들이 외국에 있는 전문의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6개월씩 나누어 일했던 예가 있었다. 하지만 평가에서 14일 이상의 휴가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2명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0.5명으로 인정받는 단점이 있었다. 더 확장시켜 생각해 본다면, 2명분의 일을 3명이 나누게 될 때 월급은 33% 감소하겠지만 모두에게 1년에 4개월씩의 휴가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3명분의 일을 4명으로 나눈다면 25%의 수입감소와 3개월씩의 휴가가 보장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비단 기러기부모뿐 아니라 출산과 육아, 휴가나 여행과 같은 개인적 시간을 보장하는 방법도 될 수 있고, 나이가 들면서 당직업무와 임상업무를 줄이기 원하는 전문의들에게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5) 워킹그룹이 할 수 있는 기타의 일들

 

회사 차원에서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는 많은 다양한 일들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구인과 구직자를 알선해주는 헤드헌팅(HR)사업이나 병원의 응급센터 평가와 운영에 대한 조언(advise), 관리(manage), 대행업무도 가능할 수 있다. 많은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일반인, 의료인 교육현장에서 교육을 수행한다. 이러한 강의는 아직까지는 개인적인 친분으로 부탁받거나, 병원평가와 관련해서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참여하기도 한다. 충분한 강의인력 풀을 조직한다면 특정단위나 단체의 교육사업을 전부 또는 일부 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속이나 전담과 무관하게 참여가 가능하고 법적인 문제 없이 운영할 수 있다. 향후 그룹의 단위가 커진다면, 응급의학 전문의들에 대한 복지사업, 응급의학저널이나 뉴스를 취급하는 언론사업, 전자차트(EMR)나 입력시스템(OCS) 등을 사용한 Informatics사업, 프랜차이즈 사업, 제약이나 의료기기업체와의 협력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변형이 가능할 수 있다.

 

6. 결론

 

과거 우리의 직업선택이 급여와 처우 위주의 단순한 기준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합리적인 업무량과 개인의 여가시간이 보장되는 양질의 직업이 더 우선시되고 있다. 응급의학과와 야간당직, 공휴일근무와 같은 특성은 비록 힘들지만, 다른 임상과들과는 완전히 다른 응급의학과만의 영역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리의 업무에 대하여 제대로 인정받고 전문가로써 대접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우리의 의무와 책임을 최선을 다하여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응급의학 전문의 수급은 과거 절대적 부족의 시절을 지나 상대적 부족의 시기를 넘기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다가올 미래의 위상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대안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대안 중 하나인 워킹그룹은 미국적인 형태가 아닌 우리의 현실에 맞게 조절된 형태로 적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많은 사람들의 다각도의 노력과 실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성공을 담보할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합리적인 근무강도에 따른 합리적인 보상, 개인의 요구를 반영한 탄력적인 근무 스케줄 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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