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저체온 치료 실시… 응급 중환자 치료 활성화
한국저체온치료학회 창립

 

국내 병원 밖 심정지환자에 저체온치료 활성화

 

- 국내 첫 저체온 치료 성공

 

19975월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에 20대 여성 박지영(가명) 씨가 의식과 맥박이 없고 동공이 풀려있는 상태로 119구급차로 실려 왔다. 119구급대원은 심정지 환자입니다라고 응급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구급대원은 구급차에서 스트레처카로 환자를 옮긴 뒤 심폐소생술(CPR)을 계속하며 응급실로 달려왔다. 병원에 인계된 후 심폐소생술을 20분 정도 더 하자 그제야 박지영의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 자발 순환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의식은 되찾지 못하고 완전히 혼수상태였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박규남 응급의학과 교수는 평소에 준비했던 쿨링 매트리스(체온 낮추는 기기)와 아이스팩을 환자의 머리와 배에 가져다 댔다. 체온을 34로 낮추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박지영에게 국내 첫 저체온 치료를 시도한 것이다.

저체온 치료법은 심장 정지 후 생기는 뇌와 장기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 신체를 동면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환자의 몸을 정상 체온보다 낮은 32~34의 저체온 상태로 일정 시간 유지해 뇌 손상을 유발하는 물질의 생성과 분비를 억제해 뇌와 장기의 손상을 막는 치료법이다. 외국에서는 피터 사파(Peter Safar)가 돼지 실험을 통해 저체온 치료의 효용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세계적으로 사람에게 적용한 임상 시험은 드물었다. 박규남은 논문에 나온 것을 공부한 뒤 박지영에게 그대로 적용했다. 그는 1995년부터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도 많이 하고 논문도 다양하게 읽어 이론적으로는 심정지 혼수 환자에게 저체온 치료를 적용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단지 당시 심정지 환자에게 적용된 사례가 드물어, 실제 치료 효과를 경험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저체온 치료를 받은 박지영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박규남은 박지영에게 뇌에 좋은 약제 사용은 물론 혈액을 묽게 하고 칼슘 차단제까지 사용해 의식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병원 밖 심정지 환자에게 저체온 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한 사례라 환자의 차도는 큰 관심사였다.

환자가 의식불명 상태로 2주가 지났을 때였다. 중환자실 간호사가 주치의인 최세민 응급의학과 전공의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어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박지영 환자의 엘튜브(콧줄)가 뽑혀 있어요.”

?”

간호사도 엘튜브가 어떻게 빠졌는지 몰랐다.

최세민이 곧바로 중환자실로 달려가 상태를 살피고 엘튜브를 다시 끼워주려는 순간, 환자가 갑자기 움직이며 혼자 중얼거렸다.

최세민은 곧바로 박규남에게 전화했다.

교수님! 환자가 움직여요

아니 무슨 소리야?”

박지영 환자가 움직여요!”

, 그래? 알았다. 곧 가마.”

박규남은 전화를 끊자마자 중환자실에 올라가 박지영의 상태를 살폈다. 박규남이 통증 반응을 확인하자 미세한 움직임이 보였다. 박규남이 그토록 기다린 순간이었다.

! 이 환자 깰 것 같아!”

환자의 의식이 되살아날 것 같았다.

첫날에 이어 다음날 박지영은 고개도 좌우로 살짝 움직이며 점차 의식을 회복해갔다. 초기에는 인지능력이 떨어졌으나 점차 좋아지며 6개월 뒤에는 정상인과 똑같았다. 병원 밖 심정지 후 혼수상태의 환자에게 시도한 저체온 치료가 국내 처음으로 성공한 순간이었다. 저체온 치료의 효과를 확인하고 예후 예측에 관한 새로운 연구 필요성을 느끼게 된 기적 같은 사건이었다.

병원 밖 심정지 환자 중 심폐소생술로 순환이 돌아온 환자의 대부분은 의식이 없다. 이 상태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상태는 악화됐다. 심폐소생술 중에 발생한 흡인성 폐렴과 뇌 손상으로 인해 체온 조절이 안 돼 고열이 발생했고, 결국 식물인간 상태가 되거나 며칠 뒤에 사망했다. 이로 인해 타 임상과 의사들은 심폐소생술을 왜 해? 돌아오지도 못하는데.”라며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심폐소생술 후 자발순환 회복된 환자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응급의학과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유럽이나 미국은 서구적인 문화 때문에 환자가 의식을 되찾지 못할 것 같으면 인공호흡 장치를 제거한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보호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보라매 사태 이후 법적으로도 생명유지 장치의 제거는 금지되었다.

결국 심폐소생술 후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많았고, 식물인간이 되어 중환자실에 무한정 입원하는 것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사회적 갈등도 일어난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심폐소생술 후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치료법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당시 여러 임상과는 심정지 후 혼수라는 질병이 자신들이 다뤄야 하는 분야라고 인식하지 못했고, 특정 치료에 의해 극복 가능한 질병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박규남도 저체온 치료를 하기 전 혼수상태에 있는 환자들이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저체온 치료를 공부하다 보니 치료 후 환자가 깨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심폐소생술 후 혼수상태 환자에 관한 공부를 독자적으로 시작한다.

박규남의 첫 시도는 국내에서 중환자 의학의 주요 분야인 심정지 후 치료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응급의학과 의사는 응급질환을 진단하고 급성 처치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초기 국내의 응급의학과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박규남은 심정지 환자의 심폐소생술부터 저체온 치료 이후 환자가 퇴원할 때까지 중환자 치료를 포함한 전체 치료를 담당했다. 이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는 응급의학과가 주도적으로 심정지 후 치료(Post Cardiac Arrest Syndrome care)의 전반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국내의 심정지 후 치료는 세계적 수준이 되었다. 최근 한국저체온치료 학회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 심실세동에 의한 심정지 후 저체온 치료를 받은 환자의 생존율은 60%에 이를 정도로 높아졌다. 심정지 후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를 살리려 한 박규남의 소명이 빛을 발휘했다.

 

- 전공의 시절 배운 술기

 

박규남이 소생의학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스승인 김세경 교수의 영향이 컸다. 김세경은 가톨릭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22년간 의사 생활을 하다가 1986년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 외상외과로 영입되었다. 김세경은 국내 처음으로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심전도 강의를 할 정도로 선진의료기술을 국내에 보급한 선진의료인이었다.

박규남이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도 김세경의 권유 때문이었다. 김세경은 1990년 응급실 인턴을 돌고 있던 박규남에게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을 권유한다.

닥터 박! 응급의학과 해보는 게 어때? 응급의학과는 전망이 좋네, 생명을 다루는 과로 외상환자, 심근경색환자 등 모든 응급환자를 다룰 수 있지. 더 좋은 건 일 년에 두 달간의 휴가가 있어. 미국 해안가에서 서핑하는 의사들은 다 응급의학과 의사지. 껄껄~ 자넨 액티브해서 잘할 거야!”

그 말을 듣고 잠깐 고민한 뒤 박규남은 응급의학과를 지원한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해보니 응급의학과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했지만, 미국과 달리 쉴 틈이 없는 바쁜 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환자를 치료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할 일도 생각보다 많았다. 김세경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보람이었다.

김세경은 국내에 생소했던 전문심장구조술(ACLS), 전문외상처치술(ATLS) 과정을 미국에서 수료하고, 이를 대학에서 강의했다. 또 마네킹과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심도 높은 심전도 강의, 기관삽관술, 봉합술을 포함한 다양한 술기 실습을 매주 실습학생과 전공의들에게 해주었다, 학생, 인턴, 전공의들에게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교육을 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교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세경은 매년 실습 학생이 뽑은 가장 우수한 교수로 선정되었으며, 이러한 교육 방식은 후에 김영민 교수에 의해 국내 처음으로 들어선 가톨릭 START 의학시뮬레이션 센터의 기초가 되었다.

박규남이 전공의를 할 때나 응급의학이 도입된 초기에는 응급실에 심정지, 외상환자가 많았다. 특히 외상환자 사망률이 굉장히 높았다. 이 때문에 박규남은 외과나 내과보다 중환자 치료에 대한 술기나 지식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의식 없는 환자가 오면 누구보다 빨리 주요 혈관을 잡았고, 외상환자 치료도 수준급으로 올라섰다.

 

- 혼수상태 환자 24시간 내 정상회복 여부 파악

 

심정지 후 혼수상태에 있는 환자의 예후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나쁜 예후는 더 정확하게 평가하고 윤리적인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식물인간 상태로 지속될 환자들의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또 좋은 예후를 조기에 예측 가능해야 ECMO(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PCI(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박규남은 저체온 치료 초창기부터 신경학적인 검사, CT, 생화학지표들, MRI, MRS, 뇌파 등을 통한 예후 인자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을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사용하기 쉽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지표는 없었다. 그러던 중 평소 알고 있던 메디피아 윤선중 대표가 박규남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려줬다.

신생아에게 뇌 손상 감시를 위해 사용되는 간단한 aEEG(amplitude-integrated EEG, 진폭통합뇌파기)를 찾았습니다. 이거 교수님이 찾던 거 아닌가요?”

윤선중이 말한 방식은 심정지 후 환자의 저체온 치료시 예후 예측에 있어서 획기적이었다.

신생아와 심정지의 특징은 뇌 전체가 전반적으로 손상을 받는다는 점이 같았다. 기존 방식은 뇌에 20개의 전극을 붙여 파악했다. 이 때문에 뇌파기록을 읽고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72시간을 찍으면 2만 장을 일일이 파악해야 해, 분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aEEG 방식은 뇌파기록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aEEG는 뇌파의 진폭을 통합해 보여줘 환자의 3일간 기록을 압축해 쉽게 확인하는 장점이 있다. 박규남은 진폭통합 뇌파가 신생아 분야에서 뇌 손상의 예후 예측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그는 앞으로 이 방법이 심정지 후 혼수상태 환자 예후평가의 전 세계 표준화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새로운 발견을 한 박규남은 aEEG를 통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오상훈 응급의학과 교수와 함께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성모병원에서 심정지 후 혼수상태로 저체온 치료를 받은 환자 130명을 aEEG를 이용해 72시간 동안 지속뇌파를 측정했다.

그 결과 24시간 내 환자의 뇌파가 지속정상 진폭을 회복하면 뇌 손상 없이 좋은 예후를 예측하는 민감도가 94.6%, 36시간 내 환자의 뇌파가 지속정상 진폭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 나쁜 예후를 예측하는 특이도가 100%로 나타났다. 심정지 후 혼수상태를 보이지만 뇌손상에서 회복하는 환자의 95%24시간 안에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 최초였다.

심폐소생술의 활성화와 심정지 후 치료의 발달로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심정지 후 혼수 환자가 다시 정상으로 깨어날 수 있을지를 진단하는 방법은 그동안 없었다. 그러나 박규남의 심정지 환자의 예후를 간편하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심정지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줄 수 있게 되었다.

이 논문은 2015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심장의학 국제학술지 서큘레이션(Circulation)에 소개됐고, 이 학술지의 편집자가 뽑은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 논문은 단일 병원 사례를 연구한 결과에 불과하다. 여러 병원의 사례가 더 보강된다면 심정지 환자의 예후를 더 정확히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규남은 현재 다른 병원들과 함께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그 결과를 반영한 새로운 논문이 발표된다면, 심정지 후 혼수상태에 있는 환자의 예후를 더욱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전망이다.

생존자의 날 행사
생존자의 날 행사

 

- ‘심정지 후 생존자의 날개최

 

2010년도까지 국내 병원 밖 심정지 환자의 신경학적 회복 생존율은 1%, 생존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박규남은 심정지 환자의 생존은 기적이 아니라, 심폐소생술과 소생 후 치료를 안 했기 때문에 생존율이 낮다고 주장한다. 심실세동에 의한 급성 심정지시 저체온 치료를 포함한 생존의 고리(chain of survival)만 잘 수행하면 60% 이상이 신경학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박규남은 2010소중한 생명, 다시 찾은 삶이라는 심정지 후 생존자의 날을 개최한다. 매년 심정지 생존자들과 가족, 당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던 119구급대원, 응급실 의료진, 심장내과 의사, 지역사회 심폐소생술 담당자 등을 참여시켰다. 이들은 심정지로부터 완전히 회복된 생존자와의 만남을 통해 지역사회 심정지 환자의 치료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환자와 보호자도 생명을 구한 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

이 행사를 통해 지역사회 심정지 환자의 저체온 치료를 포함한 생존의 고리(chain of survival)가 활성화되었다. 또 참여한 119구급대원, 응급실 간호사, 심장내과 의사들이 심정지 치료 및 저체온 치료를 포함한 심정지 후 치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참여했던 생존자는 대한심폐소생협회 심포지엄 등에 참석하는 등 대외적으로 심정지 후 치료의 중요성을 알려 나갔다.

놀라운 변화였다. 응급의료가 도입된 초창기 시절 119구급대원들은 환자를 병원에다 후송만 해놓고 곧바로 돌아갔다. 응급실 간호사도 환자를 중환자실로 보낸 이후에는 그들의 생사에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생존자의 날 행사를 하면서 응급의료진은 물론 환자 가족들의 관심이 더 생겨났고, 심정지 후 저체온 치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병원 밖 심정지 환자 회복률은 매우 낮지만, 옆에 사람이 쓰러졌을 때 곧바로 조치하면 50% 이상 살릴 수 있다. 응급의료시스템만 잘 돌아가면 50% 이상은 물론 심정지 환자 모두가 살아날 수 있다. 이 행사를 계기로 응급의료진과 구급대 등 지역사회의 고리가 더 단단해졌다.

 

- 서울성모병원 국내 첫 저체온치료센터 개설

 

저체온 치료 센터가 국내 최초로 2015년 서울성모병원에 들어섰다. 서울성모병원은 저체온 치료법을 체계화하고 관련 의료진과 다학제 연구 등을 위해 국내 첫 저체온 치료 센터를 개설했다.
이 센터는 응급의학과를 비롯해 소아청소년과, 신생아분과, 순환기내과, 신경과, 내과, 정형외과 등 각 분과 책임자로 구성됐다. 신생아 저산소성 뇌병증, 급성 뇌졸중, 외상성 뇌 손상, 급성 심근경색, 척수 손상 등에서 저체온 치료를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소생 관련 연구회 및 학회 창립

 

- 소생의학연구회 창립에 기여

 

초창기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심폐소생술과 외상소생술, 소생 후 치료 등 소생의학에 관한 학문적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지식을 공유하는 학술모임이 없었다. 이러한 부분을 안타깝게 생각한 박규남은 1999년 소생의학연구회 창립에 기여한다. 신촌세브란스 김승호 교수가 창립회장을, 학술 담당은 원주세브란스 황성오 교수, 총무는 박규남이 맡았다. 응급의학과 최초의 분과 연구회였다. 연구회는 매달 학술모임을 열고 소생의학과 관련된 각 병원 사례 및 최신 지식을 공유하며 한국의 소생의학을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 심정지 후 치료 심포지엄 개최

 

1997년 저체온 치료를 처음으로 시행한 이후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박규남은 응급의학회 특강, 서부지역 집담회, 소생의학연구회, 각 병원 강의 등을 해왔다. 이를 통해 저체온 치료의 효능을 알리려 했다. 그러나 실제로 초기 저체온 치료를 시행하고 있는 병원은 2~3개 정도에 불과했다.

저체온 치료는 중환자 치료 중 가장 어려운 치료로 알려져 있다.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응급의학 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저체온 치료 방법까지 알고 싶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연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전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박규남은 소생치료를 하면 죽어가는 환자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체온 치료 사례도 거의 없었다. 2002년 저널 ‘NEJM’에 두 편이 실린 것이 전부였다. 이 두 편이 실리면서 세계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저체온 치료에 관한 가이드라인도 없는 상황에서 박규남을 비롯한 연구진의 노력은 계속됐다.

그 노력의 결과는 관련 심포지엄 개최로 이어졌다. 2008년 박규남은 서울성모병원 윤준성, 최승필, 김영민 교수와 연구 미팅을 하던 중 최승필 교수가 외국과 교류하는 것을 제안한다. 저체온 치료를 포함한 소생 후 치료를 외국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연구하고, 소생 후 치료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개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 심포지엄을 개최하자는 것이다. 이 제안에 모두 찬성했다.

전국의 응급의학과, 중환자의학, 심장내과 등 의사와 간호사, 응급구조사, 응급구조학과 교수 등 관련 의료종사자들에게 소생 후 치료의 필요성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널리 알리면 소생의학이 더욱 발전시킬 수 있고 죽어가는 생명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박규남 등은 2009년 서울성모병원에서 세계 최초로 소생 후 치료를 주제로 한 소생 후 치료(Post Resuscitation Care)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행사에는 해외 연자와 국내 관련 종사자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행사는 2년마다 개최되고 있으며, 국내외 저체온 치료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한국저체온치료학회 창립

 

박규남은 이후 2011년 한국저체온치료학회(Korean Hypothermia Network, KORHN)도 만든다. 연구회 수준을 넘어 학회 차원에서 저체온 치료에 의한 소생률 향상을 위한 공동연구와 치료지침, 교육프로그램 등을 마련하면 확산이 더 빠를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발기인 모임에는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서울대병원 서길준 교수와 인천 길병원 양혁준 교수, 전남대 정경운·이병국 교수 등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전국 40여 병원이 참여해 국내에서 저체온 치료가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학회는 초대회장에 박규남을 선출하고 다양한 사업을 벌인다. 첫 번째 사업으로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국내 소생 후 치료지침과 통합치료 프로토콜을 마련한다. 이후 질병관리본부가 의뢰한 저체온 치료 및 소생 후 통합치료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해 국내의 저체온 치료의 보급을 통한 심정지 환자들의 일상 복귀를 위해 노력했다.

2013년부터는 김영민 교수와 함께 아시아 저체온 치료 마스터 클래스(Asia TTM Master Class)’를 열어 아시아의 저체온 치료를 이끌었다. 글로벌 의료기 회사 바드코리아와 함께 아시아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 한국저체온치료학회 심포지엄에 참여시키고, 이론 교육과 함께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실무교육도 진행했다.

한국저체온치료학회는 심정지 후 치료와 관련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2013년에는 소속 24개 병원에서 시행된 저체온 치료 930 사례를 후향적으로 분석하는 다기관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제안서를 통한 전향적 주제 선정 및 연구의 공헌도에 따른 저자 선정 등 공정성에 바탕을 둔 후향적 다기관 연구의 결과는 총 23개의 SCIE(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 학술지에 발표돼 관련 분야의 새로운 과학적 근거들을 제시했다.

2015년에는 질병관리본부의 연구비를 받아 1,500건의 저체온 치료 건수 참여를 목표로 전향적 다기관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시작 전 공개성 확보를 위해 연구계획서를 미국 임상시험 등록 사이트인 ‘clinicaltrial.gov’에 게재했고, 국내 36개 병원이 참여했다.

아산병원 김원영 교수, 중앙대병원 이동훈 교수, 전남대병원 이병국 교수 등 한국저체온치료 학회 회원들은 전향적 다기관 연구의 여러 주제들을 높은 영향력 지수를 갖는 SCIE 학술지에 발표했다. 나머지 논문들도 유수의 저널들에 투고 및 준비 중으로 관련 분야의 과학적 근거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저체온치료학회는 심정지 후 증후군과 소생 후 치료에 대한 국제적인 교류를 통한 연구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윤준성 교수의 제안에 따라 이병국, 최민정 교수 등과 함께 2015년부터 NPARC(national post arrest research consortium)과 매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학술미팅을 개최하고 있으며 여러 주제로 공동연구도 하고 있다.

2020ILCOR(International Liaison Committee On Resuscitation) 심폐소생술 지침에서 심정지 후 치료 분야는 이전 지침과 비교해 질적이나 양적으로 점차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받았다. 또 세계 유수의 저널들에서 참고문헌으로 한국저체온치료학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의 인용이 늘고 있다. 특히 심정지 후 환자의 예후 예측 분야의 경우 인용된 논문의 20% 정도가 한국에서 작성된 논문이다.

지난 20여 년간 소생 후 혼수상태 환자에 대한 고민과 치료법의 보급을 위한 지침마련, 교육프로그램개발 및 교육, 연구 등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국내 저체온 요법을 포함한 소생 후 치료의 적용률과 수준이 향상되었다. 국내 병원 밖 심정지 후 뇌 기능 회복률이 20060.6%에서 20195.4%로 급격히 증가하기도 했다.

 

응급의학 매뉴얼 도서 발간에 참여

 

박규남이 레지던트 과정에 있을 때 응급의학과 관련된 매뉴얼이 없었다. 그때에는 응급실에 인턴들이 상주하고 있었지만, 응급처치에 관한 매뉴얼이 아예 없어 응급환자가 와도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았다. 더욱이 인턴들은 한 달마다 바뀌어 응급환자의 처치를 배울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응급실에 이 같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서울성모병원 김세경 응급의학과장은 응급환자가 왔을 때 간단하게 처치할 매뉴얼을 만들 생각이었다. 당시 레지던트였던 박규남을 비롯해 이원재, 황주일 등 3명의 레지던트들이 자료를 수집하며 김세경의 응급처치 매뉴얼 책자 발간에 참여한다. 박규남은 레지던트 1년차였다. 응급의학 수련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매뉴얼은 필요했다.

자료를 수집한 뒤 김세경은 1991응급실 수련의를 위한 응급의학 매뉴얼책자를 발간한다. 발간 이후 책자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응급처치와 응급의학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인턴은 물론 응급의학 전공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오면서 응급환자 처치의 표준화가 이루어졌다. 인턴이 이 책자만 보면 외상환자, 심근경색 환자가 와도 제대로 된 처방을 낼 수 있었다.

 

학회 위상 정립과 활성화

 

- 서부지역 응급의학회 집담회 개최

 

박규남이 전문의를 취득한 이후에도 응급의학과의 위상은 여전히 정립되지 못했다. 신생과였던 응급의학과가 체계적인 전공의 교육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사들 간의 지식 공유 및 교육프로그램도 전혀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 길병원 이근 교수, 이대목동병원 정구영 교수는 지역 응급의학 집담회 개최를 제안했다. 1995년 이근, 정구영과 여의도성모병원에 있던 박규남 등은 수도권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 집담회를 만든다. 응급의학과 내의 첫 집담회였다.

집담회를 통해 응급의학 의사 간 유대 의식이 생겨났다. 응급의학과는 신생학과라는 이유로 다른 과로부터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서로 만나면서 공부도 하고 소통하면서 응급의학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나갔다.

 

- 학술대회에 다양한 섹션 마련

 

박규남이 대한응급의학회 학술 이사를 맡은 2010년에는 대한응급의학회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응급의학회에서 매년 개최하는 학술대회는 이에 걸맞지 않게 예전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학술대회 초창기에는 응급의학이 담당하는 여러 학문 분야 중 소생, 외상, 응급의료체계 등의 몇몇 분야만 주로 다루어졌다. 응급의학의 특성을 고려할 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토론을 통한 학술대회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박규남은 학술이사가 되자마자 당시 서길준 이사장의 지원을 받아 최승필, 윤준성 교수와 함께 학술대회의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한다. 이전과 달리 학술대회에서 심도 깊게 다루어야 할 메인 테마를 정했다. 또한 영어섹션을 포함해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여러 섹션을 운영해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당시에 양적으로 확장되어가는 학회의 특성상 시의적절한 결정이었다. 이러한 학술대회의 변화는 연구 발표의 질 향상과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진 응급의학 회원들의 참여 확대를 유도했고, 이를 통해 국내 응급의학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

 

박규남 교수 프로필

 

학력

 

가톨릭대학교 의학 학사

가톨릭대학교 외과학 석사

가톨릭대학교 응급의학 박사

 

경력

 

여의도성모병원 임상과장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장

가톨릭대학교 응급의학교실 주임교수

서울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장

노스캐롤라이나대학 뇌소생술 방문교수

대한심폐소생협회 기획위원장

한국저체온치료학회 회장

대한응급의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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