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중심으로 응급의료평가팀 꾸려 응급의료체계 개편에 기여
선진의료기술 세계 곳곳에 전파하며 개발도상국 의료발전 도와

정구영 전 이대목동병원 교수
정구영 전 이대목동병원 교수

 

응급의료체계 개편

 

이화여대 부속 목동병원 정구영 교수가 의과대학에서 응급의학과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1990년대 중반 어느 날이었다. 의과대학 제자 중 한 명이 정구영에게 다급하게 다가와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굉장히 위급합니다. 교수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당시 의료계에선 응급의학이라는 학문이 제대로 정립이 안 돼 있었지만, 응급상황에서는 응급의학과 교수가 가장 적절한 의료진일 수밖에 없었다. 정구영은 곧바로 제자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수도권의 2차 병원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제자의 아버지는 전날까지만 해도 혈압이 안정적이었고, 호흡도 좋았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쇼크가 오면서 혈압이 높아졌고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복강 내에 혈액이 고여 있는 혈복강(血腹腔·hemoperitoneum)까지 겹쳤다. 외과 전문의이기도 했던 정구영은 혈복강의 위험성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복벽의 안쪽 내벽과 복부 장기 사이의 공간에 피가 쌓여 복부 통증과 저혈압 등 다양한 증상이 생기고 있었고, 대규모의 출혈이 일어나면 지혈이 쉽지 않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간이 손상된 것 같았고, 쇼크 상태가 이어졌다. 적절한 치료 시점을 놓친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가장 최선의 치료방법은 무엇인가?’

정구영은 혼자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복부를 빨리 열어 수술하는 게 최선 치료방법일 것 같았다. 환자를 구급차에 급하게 실어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겼고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환자의 목숨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제자의 아버지가 대학병원에 오거나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살 수 있었는데 시기를 놓쳤다.

 

1990년대에는 응급처치를 초기에 제대로 받지 못해 숨지는 환자들이 많았다. 사전 예방을 하면 충분히 살 수 있는 환자인데도 응급의료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고 체계적인 의료시스템도 갖추어져 있지 않아 병원에 도착했는데도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응급의학이 점점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 오는 환자 중에는 중증도도 심하고 위급성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응급실에 상주해 있는 의료인력은 인턴과 레지던트 위주여서 응급환자나 중증 환자가 왔을 때 제대로 된 응급처치는 쉽지 않았다. 전문성도 없었고, 숙달되어 있지도 않았다. 신속한 응급처치가 안 되기 때문에 살 수 있는 환자도 죽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병원에 각 과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응급의학과는 가장 적절한 과였던 것이다. 주요 응급질환에 대한 진단과 처치를 할 수 있는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상주하면서 우선적인 처치를 하고,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면 위급성에 따라 각 과로 연락하는 시스템이 바람직한 응급의료체계였다.

제대로 된 응급의료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병원 문턱도 밟기 전에 사망환자가 죽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정구영은 응급의료체계 개선에 나선다. 대한응급의학회 주도로 응급의료체계 개선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응급의료평가팀이 학회 내에 꾸려졌다. 응급의료체계 개선이 목적이었다. 한국의료관리연구원(현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함께 응급의료평가팀을 구성하고 응급의료체계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응급의료체계 개선 시도는 정구영 등이 처음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전에도 몇 번 있었지만, 대대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또 학회 중심이 아닌 일부 대학병원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연구도 몇 개월 만에 단기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포괄적이고 전문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응급의료평가팀은 2~3년 정도 계속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를 수행하면서 평가팀의 주요 성과 중 하나가 외상환자 예방 가능 사망에 대한 분석이었다. 외상 사망 환자에 대한 분석결과 예방 가능 사망률이 절반을 넘은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사망한 외상환자 중 사망원인을 판단할 수 있었던 131명을 조사한 결과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은 50.4퍼센트로 나타났다. 두 명 중 한 명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는 연구결과였다. 제대로 된 응급의료체계, 외상치료체계를 갖추면 안 갖춰진 것보다 사망률은 1/2 또는 1/3 이상 예방 가능했다. 사람들이 제대로 치료받으면 살 수 있는 예방 가능 사망률이 조사됐고, 이 연구조사 결과 발표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병원이 스스로 잘못하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이라 의대교수로서 쉽지 않은 리포트였다. 병원이나 개인의 잘못보다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말한 것이었다.

1998~1999년도 처음으로 이 논문을 통해 예방 가능 사망률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외상치료 문제를 제기한, 예방 가능 사망에 대한 개념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적용한 대한응급의학회 차원의 최초 보고서였다. 이 논문은 2001한국의 예방 가능 외상 사망률과 외상 처치 체계의 변화라는 주제로 대한응급의학회지에 발표됐고, 이를 계기로 응급의학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됐다.

 

이 연구논문 발표 이후 예방 사망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있었고, 응급의료기금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당시 응급의료기관에는 스스로 벌어서 먹고사는,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119는 정부조직으로 예산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의료기관은 그렇지 않았다. 응급실에 실려 오는 외상환자 등은 공적 영역의 진료이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예방 가능 사망 연구가 나오면서 24시간 365일 우수한 인력이 응급실에 준비되고 있다가 응급·중환자가 오면 치료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를 위해 드는 비용은 정부가 나서 의료기관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적절한 환자를,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 응급의료체계 개편은 공공의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상예방 가능 사망률 연구는 이후에도 두 차례 전국 단위로 진행되었고 현재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중요한 질적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의료기관이 응급의료를 위한 인력과 장비를 갖추면, 정부는 응급의료기금으로 병원을 지원해줬다. 그렇다고 주먹구구식으로 응급의료기관을 선정해 지원할 수는 없었고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통한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기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한 전담 조직이 필요했다. 2001년 응급의료기관의 평가 및 지원을 위한 중앙응급의료센터가 국립의료원 내에 생겨났다.

 

1990년대 중반 20~30억 원에 불과했던 응급의료기금이 응급의료의 발전을 위한 노력으로 15년 사이에 2,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기금의 사용범위도 넓어졌다. 기존의 의료기관만 지원했는데, 119 소방에 대한 예산도 응급의료기금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기금이 제대로 쓰였나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가 힘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가 중요하다. 객관적 자료는 각 병원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정보 수집체계가 시급했다. 응급의료정보화 사업이 필요했고, 마침내 그 일환으로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 Natioal Emergency Department Information System, NEDIS) 구축이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덕 기획팀장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네디스(NEDIS)는 응급 관련 기초자원을 수집하는 시스템으로 실시간으로 환자현황을 파악할 수 있고 응급환자의 현황을 한눈에 분석하는 시스템이었다. 데이터를 알아야 응급의료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응급실에 온 환자에 대한 진료 정보를 수집해 이를 근거로 응급의료통계 산출,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평가 및 질 향상 등 정책 근거자료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네디스가 응급의료의 핵심적 요소로 떠올랐다. 네디스는 전국의 응급의료기관으로부터 전송되는 진료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선진국형 응급의료체계구축 기반 마련 및 응급의료에 관한 연구와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 제공을 위해 2003년에 구축이 시작된 정보망이다.

 

정구영은 네디스 구축과정에 처음부터 깊숙이 개입했다. 그는 2002년 네디스 구상단계에서 시작해 2007년 네디스 구축과 확산 때까지 자료의 표준화와 프로그램 개발 등 전체 응급의료센터를 대상으로 유용한 자료를 모으게 될 때까지의 전 과정에 참여한다. 네디스는 병원 평가가 가장 우선이었다. 자료가 있어야 평가를 할 수 있었고, 비교 가능한 똑같은 자료를 전체 응급의료기관에서 모아야 제대로 된 비교를 할 수 있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평가를 위한 자료 구축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병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병원들이 내부 자료를 주는 것을 꺼렸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응급환자 진료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네디스(NEDIS) 입력으로 짐이 하나 더 늘어 싫었다. 환자 기록을 일일이 입력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데이터를 주지 않으면 기금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기금을 받기 위한 병원들은 네디스 자료수집에 협조하기 시작한다. 처음 16개의 권역응급센터 위주의 자료수집이 다른 일반 응급의료센터까지로 확대됐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1기 수료기념 사진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1기 수료기념 사진

 

메디컬 컨트롤(medical control)

 

응급의료체계는 병원 전() 단계와 병원 단계로 나뉜다. 병원 전 단계는 응급환자의 현장이송, 응급구조사의 응급처치, 의료지도 등을 하는 것이고, 병원 단계는 응급환자 진료나 입원, 응급수술 등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병원 단계에서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초동 대처가 오히려 더 중요하다. 우리의 의료체계에서 병원 전은 119 구급대가 담당한다. 이들의 의료지식이 환자의 생사와 병의 예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구급대원에 대한 병원 전 의료지식 교육은 시급한 과제였다. 병원 전 단계에서 치료가 중요하기 때문에 병원 전 외상 처치 및 이송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며, 병원 내에서는 실효적인 외상팀의 구축이 필수적이었다.

 

미국의 응급의료체계 중 병원 전 단계는 월남전에서 훈련된 응급구조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고급 응급구조사 제도를 시행해 미국의 병원 전 처치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반면 유럽의 병원 전 진료는 전통적으로 의사가 주도해왔다. 전쟁 때 의사가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의사의 수가 충분해 직접 출동하는 체계를 구축해 왔다. 이 때문에 병원 전 처치는 미국과 비교해 오히려 앞서나갔다. 의사가 직접 현장 의료를 담당하고 있으므로 의료지도가 필요 없었으며, 응급구조사는 의사의 보조 역할만 하면 됐다. 이들에 대한 교육과 평가도 현장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응급의학 의사들에 의해 수행됐다.

 

우리는 의료의 역사가 길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도 충분하지 않았고, 병원 전 인력도 없는 상태에서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했다. 이 때문에 응급구조사의 교육은 중요했으며, 의사들의 의료지도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정구영은 소방과 응급의학과의 연결고리 역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병원 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응급구조사(Emergency Medical Technician, EMT)의 의료행위를 통제하고 지도하는 메디컬 컨트롤(의료지도), 의사가 병원 도착 전에 응급처치를 직접 시행하지 않는 체계에서는 필수라고 여겼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의료행위를 했을 때 그 법적 책임을 없애기 위한 차원이기도 했다. 의사가 119 구급대의 교육과 그들이 응급처치를 잘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의료지도를 해야 할 의무를 느꼈다.

 

그러나 메디컬 컨트롤에는 한계가 있었다. 의료지도를 하면 지도 의사가 권한을 가져야 하는데, 권한이 많지 않았다. 의료지도를 통해 구급대원에 대한 인사권 일부분을 평가하는 것이나 의료지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패널티를 주는 그런 권한이 지역 책임 의사들에게 전혀 없었다. 의료진 사이에서는 실질적 의료지도가 될 수 없다는 불만이 쏟아져나왔다. 물론 소방본부 안에 지도 의사라는 직종이 있어 이들은 일부 풀타임과 파트타임으로 응급의학 의사로 일하고 있지만, 실질적 의료지도가 되려면 인사권을 주는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소방과 응급의학과 의사와 가교역할을 하기 위해 소방에 뛰어들었던 사람도 있었지만, 두터운 관료 조직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결국 나오는 사례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 일부 대학병원이 소방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손상감시체계 구축 및 기틀 마련

 

응급의료가 기반을 갖춰나가면서 손상에 관한 관심도 올라갔다. 외상(trauma)과 중독(poisoning), 화상 등을 포함하는 손상은 모든 연령에서 주요 사망원인으로 부각됐다. 이로 인한 노동력 상실과 경제적 손실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손상을 소홀히 다루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질병관리본부는 2005년도부터 의료기관 기반의 손상감시체계를 단계적으로 확대했고, 손상 위험요인을 파악하기 위해 2006년 응급실 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심층조사를 정구영을 중심으로 실시한다.

그는 교통사고의 발생, 자살의 원인, 아동 손상의 원인 등 손상에 대한 데이터를 만들어 변화해가는 과정, 손상에 대한 감시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교통사고, 자살, 중독, 두부척추 손상, 취약 전 어린이 손상 등의 예방을 위한 자료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응급은 치료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표본손상감시 체계는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 2020년 현재는 우리나라 23개 병원이 참여해 손상자료에 대한 전국적인 데이터가 모이고 있으며, 손상 예방에 활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 및 응급 손상 통계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구영에게 아쉬운 점은 음주에 대한 손상 문제를 계속 다루지 못한 것이다. 그는 술 문제로 응급실로 오는 환자는 술로 인해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술을 끊도록 하기 위한 알코올 중재 프로그램을 1년간 시범사업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이후 주관 기관이 없어지면서 연속성을 갖지 못했다. 정구영은 시범사업을 계속했으면 응급실의 손상 예방이나 알코올의 사회문제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속성을 갖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예방사업, 응급실 기반 손상 예방사업을 하면 사회적으로 이득이 있을 것으로 보며 지금이라도 다시 다루기를 바란다.

2019년 프놈펜에서 
2019년 프놈펜에서 

 

선진의료기술 세계 곳곳에 전파

 

2008년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덕은 동티모르에 응급의료체계 구축사업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침 인근 이대동대문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구영에게 윤한덕은 대신 가주기를 바랐다. 응급의료 분야에서 국내 처음으로 시도한 ODA 사업이었다. 의료진과 구급대원을 동티모르에 파견해 구급차를 보급해주고, 인력교육 등을 통해 선진의료기술을 알려주려는 의도였다.

당시 동티모르에는 의료시스템이 거의 없었고, 구급차도 낡은 옛 차량만 몇 대 있을 뿐이었으며, 의료인력도 아예 없었다. 쿠바에서 온 의사가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열악한 동티모르를 지원하기 위해 정구영은 의사 2명과 응급구조사 2명으로 ODA 팀을 꾸렸다. 정구영 팀은 현지 의사들 몇 명을 뽑아 구급차 탑승하는 것을 교육하고 의사들의 역할, 구급차 탑승 요원의 역할 등을 나누어 교육했다. 현지에서 한 달간 교육하고 그중 일부를 한국으로 데려와 2주 동안 견학시켰다.

한국의 선진의료기술이 세계의료시장에서 주목받는 첫 시도였다. 정구영은 해외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응급의료체계 구축 등 선진의료기술을 전파하는 데 주력한다. 신생 독립한 나라의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전문 지식과 경험, 순수한 열정을 쏟아냈다. 이후 그는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등에 응급의료를 수출한 것을 비롯해 다양한 병원 관련 사업으로 선진의료기술이 필요한 개발도상국에 대한민국의 선진의료체계를 알리는데 기여한다. 정구영이 소속된 이화여대 의대는 개발도상국을 지원해주는 유·무상 연계사업을 시도한다. 유무상 연계를 통한 병원 관리 사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깊게 관여한 사람은 정구영을 제외하고 국내에는 거의 없다. 정구영은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rea Foundation for International Healthcare, KOFIH) 등과 함께 보건의료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의 선진의료기술 수출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3년도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간 정구영 교수(가운데)가 진료시작 기도를 하고 있다.

 

Initiative EM(주도하는 응급의학과)

 

정구영이 초창기 응급의학과 과장으로 있을 때 ‘Initiative EM’이라는 비전을 만들었다. 응급의학과가 주도적으로 나서 응급실뿐만 아니라 응급상황에서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며, 대외적으로는 지역사회에서의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해 지역 주민들이 양질의 응급처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응급의료 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라는 의미였다.

정구영은 27년을 한 곳, 이화여대 병원에만 죽 있었다. 이제는 해외봉사활동을 통해 선교는 물론 우리의 우수의료를 전달하는 게 희망이라고 한다. 특히 응급의학을 전공하는 전문의들은 환자의 처지에서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응급의학과의 특징이자 장점 중 하나는 의사가 아닌 환자의 처지에서 여러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환자의 통증을 먼저 조절해 주는 게 진단을 내리는 것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과는 아마 응급의학과밖에 없을 것입니다. 환자의 고통과 생명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결정을 한다면 그런 결정에 반대하는 의사는 없을 것입니다.”

 

이화여대의 대표적인 해외봉사활동 기구인 EMC(Ewha Medical Care)2001년부터 도맡았다. 20년 가까이 EMC를 이끌어왔다. 이를 기반으로 이화의료선교회가 만들어졌고. 로제타홀 이화의료선교센터가 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화와 이화의료원이 빚진 자로서 세계의 소외된 자, 특히 핍박받는 여성들에게 교육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활동, 즉 선교적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ODA도 선교라는 사명 때문에 하게 된 것이다.

정구영 교수는 20년간 이끌어왔던 EMC가 그의 선교적 정신을 가장 의미 있게 유지하는 활동으로 평가한다.

봉사 지역을 바꿀 때마다 적절하게 현지 선교사님들을 연결해 주셔서 의료봉사와 선교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의과대학을 거점으로 하는 의료봉사활동 발전도 모색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지금의 이화의료원의 국제화에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발전 과정은 몇몇 교수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화의료원이 그 뿌리를 인식하고 선교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교직원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합니다. 이화의료원의 기독교적 정체성의 확립과 조직 내에서의 그 가치의 확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EMC는 이의 핵심적 활동이 되어야 합니다.”

 

정구영 교수 프로필

 

학력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대학원 의학 석·박사

 

경력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일반외과 전공의

거제 옥포대우병원 외과 과장

미국 반더빌트 대학병원 외상학 연구원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장

이대동대문병원 응급의학과장

이대 의과대학 응급의학교실 교수

이대목동병원 응급진료부 재난의료지원센터장

대한임상독성학회 부회장

대한응급의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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