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바라다 보이는 광활한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평화로운 러시아의 노래가 신비한 울림으로 전해 온다. 멀리 말과 낙타의 발굽 소리에 섞여서 동양의 가락이 울려 감돈다. 아시아의 대상(隊商)이 다가온다. 가까이서 이윽고 멀리 사라져 가는 그 메아리는 차츰 초원의 하늘로 사라져간다’라고 보로딘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해설이 적혀 있었다. 학창시절 그 음악을 듣고 해설을 본 뒤로 중앙아시아를 동경했다.

3월 초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 제안이 왔다. 새로운 대통령이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데 보건 분야를 맡아 달라고 했다. 가슴이 뛰었다.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응급의료체계와 원격의료 분야에서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따라 오는 개발도상국의 의료체계 발전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드디어 기회가 왔는데 거기다가 동경하던 중앙아시아에서 초청이라니….
바로 날아가서 정말 광활한 초원의 한가운데에 섰다. 상상한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초원의 나라, 우즈베키스탄의 보건체계는 상상 이하였다. 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했다. 구소련의 일원으로 공화국을 수립하였고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1991년 완전 독립하였다. 이후 보건체계는 무너졌고 돈 있는 사람들은 인도, 이스라엘,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의 병원을 찾았다. 시골의 병원을 믿지 못해 도시의 병원으로 환자들은 밀려 왔다. 이른바 도시의 큰 병원들은 환자의 심각한 적체로 민심은 폭발 직전이었다. 오죽하면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큰 병원 응급실에 대통령이 직접 환자로 가장하여 진료를 받으러 갔으나 2시간 동안 기다리다 지쳐 사무실로 돌아온 후 담당 장관과 큰 병원 원장들을 모두 교체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보건부 장관과 관계자를 만나 여러 차례 회의와 병원에서의 현장 방문을 통해 몇 개의 아젠다를 도출했다. 보건체계 개혁의 요체인 의료보험을 중심으로 보건 분야의 전산화와 정보화, 의료인의 교육과 수련, 병원 인프라의 선진화, 그리고 응급의료체계의 강화로 미래를 위한 아젠다를 결정했다. 지난 40년간 우리나라는 이 다섯 분야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고 선진국을 따라 잡았다. 특히 의료보험은 1977년 시작하여 1989년 전 국민으로 확대됐다. 오바마가 칭송한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오늘날 국민의 만족도가 높다.
개혁을 위해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은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다. 우즈베키스탄은 과거 스키타이 문명과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으로서 찬란한 역사 그리고 무역과 문화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당연이 지도의 중심이었다. 대상들이 실크로드를 오고 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손에 쥐여진 한 장의 지도였다. 지도의 정확성에 따라 돈, 시간, 사람의 생명이 좌우됐다. 따라서 권력은 지도에서 만들어 지고 과거 권력자들은 이를 최대한 활용했다.
우즈베키스탄의 미래 지도를 그리면서 유럽,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의 과거 지도를 펼쳐 보았다. 미래로 떠나는 우즈베키스탄에게 가장 매력적인 지도는 우리나라였다. 우리는 지난 40년간 잘 살아 왔다. 나는 지난 40년을 현장에서 경험했고 그 것들을 기억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나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지도에 우즈베키스탄의 사회주의, 이슬람의 종교와 문화, 경제 여건을 고려하여 수정하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아무도 가보지 않은 초원에 서 있다.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새로운 선거와 4차 산업혁명이 닥쳐오고 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우리나라가 미래로 가기 위한 정확한 지도를 그려 우리에게 보여 줘야 한다. 누구의 지도가 정확한지 평가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 놓인 초원을 지나서 강을 건너고 가끔은 산맥을 넘어 힘들 때 보듬고 다독이며 미래의 희망으로 이끌 지도자의 존재다. 그는 풍부한 경험, 굳건한 의지, 따뜻한 포용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무도 가보지 않았으며 평화롭지도 않은 광활한 초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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