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체의 의료체계 틀 안에서 응급의료체계의 발전을 도모해야

지역사회 전체의 안전 수준을 향상시켜 손상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

조준필 아주대 의대 교수

대우그룹은 1990년대 재계서열 2위까지 올라섰다. 현대그룹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로 오늘날 국내 재계서열 1위 삼성그룹을 앞설 때가 있었다. 대우신화를 쓴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은 학교법인 대우학원을 설립하고 후학양성에 나섰다. 공업초급대학에 불과했던 아주대를 1977년 김우중 회장이 인수해 종합대학으로까지 끌어올렸다.

재벌이 대학을 설립하면서 1990년을 전후해 의료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서울대병원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두 거대 기둥으로 운영되던 병원에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현대와 대우, 삼성이 자본을 앞세워 재벌이 나란히 의료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1989년 현대그룹이 서울아산병원을 만들어 재벌의 병원경영 전면에 나섰다. 그로부터 5년 뒤 1994년 6월 대우가 아주대병원을, 그해 11월 삼성이 서울 강남에 서울삼성병원을 각각 개원했다.

대우그룹은 아주대를 인수하고 난 뒤 1988년 의과대학을 신설한다. 병원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대우는 국내 최고의 시설로 아주대병원 건물을 지어나갔다. 이후 의대 졸업생들이 졸업해 인턴으로 근무하는 시기인 1994년, 아주대 재단은 아주대병원을 만들어 본격적인 병원경영을 시작한다.

당시 경기 남부권에는 병원이 많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원 인구 120만 명을 담당할 큰 병원은 수원에는 아주대병원과 가톨릭대학 제5부속병원(지금은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밖에 없었다. 특히 수원은 지리적으로 응급환자가 많은 곳이었다. 아주대병원은 경기 남부 권역에서 의대가 있는 유일한 대학병원이었다.

거대 자본을 투입한 대형병원의 탄생은 의료시장을 발칵 뒤집었다. 아산병원과 삼성병원은 불과 10여 년 사이에 100년이 넘는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공격 경영을 내세운 것이다.

아주대병원 전경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 창립멤버로 조준필 영입

아주대병원이 들어설 무렵인 1994년 조준필은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2년간 외과 펠로우를 마치고 외과 전임강사로 근무했다. 그는 외과 펠로우로 있으면서 외상만을 전담으로 다루는 외상 외과를 전공하고 있었다.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세부 전문의로서 활동할 계획이었다. 당시에는 외상 외과라는 개념 자체도 명확하지 않았을 때였다.

그해 6월 아주대가 종합병원을 개원하기로 하면서 대대적인 인재영입이 이루어졌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외과 전임강사로 근무하고 있던 조준필도 영입대상이었다.

아주대병원은 응급의학과를 신설하기로 했고, 적당한 인재를 찾아 나섰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응급의학에 대한 학문적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응급의학 전문의는 없었고 응급의학에 대한 학문적 개념도 생소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있었지만, 응급환자를 위한 독자적인 전문의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병원은 외상 외과를 세부 전공한 조준필이 응급의학의 적임자로 생각하고 그를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 창립 멤버로 영입한다.

조준필이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 창립 멤버로 활동할 시기인 1993~1995년은 국내에서 대형사고가 연일 이어졌다. 각종 대형사고로 잇따라 터지면서 응급의료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던 시기였다. 당시 삼풍백화점이 모래성처럼 주저앉았고, 성수대교는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대형사고가 이어지면서 응급환자 치료에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응급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고, 환자를 수용할만한 응급시설도 거의 없었다. 응급의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그에 따른 응급의료체계는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응급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선진국형 체계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의료계는 물론 정부, 국회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당시 응급실의 상황은 열악했다. 각 과에서 인턴들이 보고 난 뒤 후속 진료를 하는 곳이 응급실이었다. 응급환자 진료 경험이 적은 인턴이 진료를 하다 보니 환자 상태를 판단해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결정도 늦어졌다. 의료진은 환자들의 응급상황을 보고 응급처치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우선 해야 할 일이었다. 이후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임상경험이 많지 않은 인턴이 하다 보니 여러 문제점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의학과를 만들어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제대로 된 수련과 응급의료체계 정비가 중요한 과제였다. 조준필은 아주대병원에서 하나씩 응급의료체계를 만들어가고 레지던트에게 제대로 된 수련을 지도하고 싶었다. 이후 레지던트들에게 꾸준히 수련하면서 차츰 술기를 익혀나가도록 했다. 이 같은 노력이 계속되면서, 수련의들의 응급실 근무경력이 쌓이고 응급진료의 질적인 수준도 향상되며 환자도 늘어났다.

경기 남부 권역에서는 다양한 환자들이 많이 찾았다. 각종 공사가 다른 곳에 비교해 많았고 인구도 비교적 한꺼번에 몰려 있는 편이었다. 경기 남부 권역에 있는 아주대병원이 규모도 커 경기 남부와 충청도 일부에서 야간이나 공휴일에 환자들이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몰려들었다.

응급환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이 중요… 지역사회 네트워크 필요

조준필은 외과 및 응급의학 전문의로서 10년이 넘게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을 찾는 응급환자 중 암 환자나 중증 외상 환자, 대량 출혈 환자를 비롯해 다친 사람이 다양했다. 병원이 사람을 치료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예방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게 중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손상 예방과 안전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다치는 것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지가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

“아주대병원에 실려 오는 환자들은 모두 지역사회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지역사회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예방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손상 예방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후 조준필은 손상 예방을 공부할 것을 결심한다. 손상 예방을 하려면 지역사회 전체 공동체가 안전이라는 것을 중요한 아젠다로 삼아야 했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안전의식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지속적으로 같이 노력해야 일정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 대부분은 다치는 것을 흔히 개인 문제로 생각한다. 재수가 없어 다쳤다, 이런 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을 분석하고 위험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손상 예방에 더 나아가 안전증진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국민도 그렇고 의사도 질병 예방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질병 예방이 손상 예방과 같은 의미라면, 안전증진은 건강증진과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준필은 1996년부터 안전증진과 건강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 안전증진 모델로서 국제안전도시를 알게 됐다. 국제안전도시는 사고로 인한 손상의 문제를 공중보건학적 과제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국제안전도시로 공인을 받게 되면 국제비정부기구인 국제안전도시공인센터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조준필의 노력으로 2002년 국내 최초로 아주대병원이 있는 수원시가 국제안전도시 공인을 받았다.

국제안전도시는 1989년 9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제1회 사고와 손상 예방 세계학술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대두됐다.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라는 선언에 기초한다. 국제안전도시 공인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국제비정부기구인 국제안전도시공인센터(ISCCC)에서 주관하고 있다.

조준필은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 예방을 위해 체계를 갖춘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느껴 2004년 아주대학교의료원 지역사회안전증진연구소를 공식적으로 만들었다. 연구소를 설립해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힘쓰려고 했다. 수원시를 비롯해 지금은 국내 20개 지역단체와 아시아 지역에 자문하고 있다.

조준필은 자치단체 단위로 해 자문도 하고 지역사회 손상 자료를 분석해서 안전증진 정책 방향 조언도 손상예방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한다. 필요하면 자문도 했다. 고위험 계층이나 손상 우려가 큰 사람들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손상 예방과 안전증진의 정책을 성과가 날 수 있도록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응급의료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의료체계 안에 존재

1993년 6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다. 1994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공포는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의 시발점이 되었다. 법이 갖춰지면서 응급의료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응급의학이 전문과목으로 인정되는 시기도 이때였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응급구조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대한민국의 응급의료 전문 인력 양성의 길이 터졌다.

1987년 영동 세브란스병원이 우리나라 최초로 응급의학과를 개설했으며, 1989년부터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시작했다. 1989년 12월 대한응급의학회가 창립됐다. 1990년부터 시작된 전국적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서구적 모델의 응급의학이 도입됐다.

1995년에 응급의학이 전문과목으로 인정돼 1996년 2월 제1회 전문의 시험을 통해 51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배출됐다.

조준필은 응급의료가 초창기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평가한다. 일본의 의료전달체계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고 했다.

일본의 구급구명과는 내과, 외과, 정형외과, 흉부외과 등이 많이 관여하고 있다. 20여 명의 전문의가 모여 그룹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응급환자를 보기 위한 응급실 형태가 이렇게 꾸려졌다. 인력은 우리보다 잘 갖춰져 있다. 응급실에는 경증 환자가 올 수 없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구급차나 다른 병원을 거친 환자만 대학병원에 오게 되어 있다. 잘 갖춰진 의료진이 대기하며 중증환자만 볼 수 있도록 체계가 갖춰져 있다.

“응급의료는 응급의료만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의료체계 안에 중요한 한 분야로서 같이 존재합니다. 응급의료 문제점이 꼭 응급의료 그 자체의 문제점이 아니죠. 현장에서부터 이송 중 처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후속 및 다른 과의 진료, 검사나 시술과 연관되어 있죠. 병원 밖에 이송 전 처치, 현장 이송 문제가 응급실과 직결됩니다. 응급실은 의료전달체계 안에 전달체계에 영향을 준다고 할까요. 응급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의료시스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의료시스템 전체 개선방안과 응급의료 맥을 같이 합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제도를 갖춘 나라는 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이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전문의 제도가 먼저 생겼다. 중국은 응급의학이 잘 안 돼 있고, 전문의 제도가 없다. 일본은 응급실에서 구급구명과 소속으로 일하는 의사들이 있지만, 전공의 체계가 우리와 다르다. 우리나라가 제도나 법률적으로 전문의 제도를 잘 정비하고 수련 과정도 잘 만들어져 있는 편이다.

전문직업인으로서 균형 있는 삶이 중요

조준필이 의사의 꿈을 키운 것은 고교 때이다. 막연하게나마 의사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부산에서 고교를 다녔는데, 부친은 부산에서 제조업을 하고 있었죠. 아버지는 제가 공대에 진학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버지 일을 돕기를 바란 것이죠. 특히 제가 장남이어서 그랬나 의대를 가더라도 고향에서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연세대 의대에 진학했고, 외과를 전공해 서울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준필은 전문직업인으로서 응급의학과 의사로서의 균형 있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레지던트 트레이닝 초기에 24시간, 또는 36시간 잠을 안 자고 환자를 봤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렇지만 의사가 장시간 휴식 없이 혹은 잠을 자지 않고 진료에 임하면 집중력이 떨어져 진단과 치료에 실수할 수도 있거나 불친절해질 수 있습니다. 환자를 위해 좋지 않은 일이죠. 그런 상태에서 치료를 계속한다는 것을 환자가 안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속 가능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주변을 잘 돌보면서 일생을 추구하면서 전문직업인으로서 의사의 직분에 충실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응급의학, 응급의료라는 일에 헌신하기 위해서는 삶과 일이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준필 교수는 1983년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 연세의료원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외과 전공의를 수료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응급의료전달체계, 외상진료전달체계, 손상예방 및 안전증진, 재해·재난 의료 대응 등이다. 1999년부터 ‘수원시 안전도시 만들기’ 사업을 수행해 2002년 수원시가 안전도시공인센터로부터 국제안전도시로 공인받는 성과를 냈다. 아주대의료원 지역사회안전증진연구소장을 겸하고 있다. 경기도립의료원장 겸 수원병원장과 대한응급의학회 회장을 지냈다.

아주대병원 응급실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에는 15명의 응급의학 전문의와 16명의 전공의가 있다. 의료진은 중독 및 중환자 파트, 심정지 후 소생 처치, 소아 응급의료, 응급영상진단, 신경 응급(뇌졸증, 어지럼증, 뇌소생술) 등 5개의 세부 전문분야로 나뉘어 연구와 진료에 임하고 있다.

아주대는 국내에서 다양한 환자가 많은 곳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련을 받기에 좋은 환경이다. 환자를 많이 보면 아무래도 경험이 많아지게 돼 수련의들이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응급의학은 소문나서 오는 과가 아니다. 환자들은 가까운 병원에 가는 경향이 많다.

인근에 이 정도 규모로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이곳 일대에 큰 병원이 없어 경기 남부 권역에서 중심병원 역할을 한다. 아주대병원은 현재 1,200병상을 갖추고 있다.

다른 응급실과 마찬가지로 아주대병원 응급실에 환자들이 들어오면 분류를 한다.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체계인 케이타스(KTAS, Korean Trige and Acuity Scale)를 통해 환자를 분류해 입원을 시킬 것인지, 수술할 것인지, 아니면 퇴원시킬 것인지 결정한다. 케이타스로 우선 순위를 정해 응급실 베드를 배정한다.

중증 구역, 경한 구역, 베드에 눕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분류한다. 아주대만 해도 구역이 5구역으로 나누어졌다. 응급실에 응급중환자실이 따로 있고, 응급 병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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