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덕의 모교인 전남대학교병원.

응급구조사 이야기(2)

2018년 11월 3일(윤한덕의 페이스북)

** 전제해 두지만 이 글은 응급구조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예로써, 심근경색을 생각해 보자. 치료시간을 단축하려면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119구급대원이 12유도 심전도 검사를 실시하고 이를 의사에게 전송해 확인한 후, 시술(PCI라고 한다)을 해야 할 심근경색이면 심혈관센터로 이송하면 되는 것이다. 이 프로토콜은 아주 간단하고 북미와 유럽에서는 흔하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도 한다.

그런데 그 간단한 절차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현행의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에서 12유도 심전도는 허용되지 않는다. 환자의 몸에 전극을 3개 붙이고 감시하는 것은 허용되나, 전극을 10개 붙이고 검사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환자는 가까운 병원에 이송되어야 하고, 심전도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다음에 ‘전원’을 통해 심혈관센터로 다시 이송된다. 의료비도 낭비고, 의료자원도 낭비고, 무엇보다 환자에겐 ‘황금 같은 시간’이 버려지는 것이다.

게다가, 응급실에서도 전극 붙이는 것까지는 응급구조사가 하되, 실행 버튼은 의사가 와서 누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검사는 해야 하고 의사는 부족하고 위법은 피해야 하니까. 정말 웃기는 건, 환자의 몸에 흐르는 전기신호를 검출할 뿐인 심전도검사는 응급구조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해도 불법인데, 환자의 몸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위험한’ 제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의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유리한 사례나 문헌만을 제시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작태에 질린 나지만, 똑같은 짓을 한 번 해보련다.

아래 사진은 2016년 스웨덴의 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주차장에 바글바글 모여있는 구급차 중 하나에서 ‘paramedic’(우리나라로 치면 1급 응급구조사쯤이다.)이라고 소개한 대원이 보여준 의약품 가방이다. 사진을 확대해 보면 가방 속에 빼곡한 그 의약품들 중 에피네프린, 아트로핀, 몰핀, 케타민, 아데노신처럼 어마어마한 약물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의사의 직접적인 지시 없이 소위 ‘standing order’(사전약속처방쯤으로 간주할 수 있다.)에 의해 그 약물을 투여한다. 최근의 변화가 아니다. 2002년 이 직장에서 근무를 시작해 처음으로 가 본 뉴욕과 볼티모어에서도 유사한 목록의 의약품을 standing order에 의해 투여하는 것을 확인했다. 2018년 현재 우리나라 1급 응급구조사가 ‘의사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해’ 정맥으로 투여할 수 있는 약물은 어떤 게 있을까? 놀랍게도 고작 ‘포도당’과 ‘수액’ 뿐이다.

업무 범위의 한계에서 시달리는 사람은 응급구조사이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다. 나는 벌에 쏘여 과민성 쇼크로 119를 호출해도 에피네프린 0.3mg를 피하로 투여받기 위해서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있어야 한다. 사고로 뼈가 부러져 덜컹거리는 구급차에서 고통에 시달려도 구급대원은 내게 그 흔한 진통제 하나 줄 수 없다.

이런 불합리는 왜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금년 6월 노컷 뉴스의 기사이다.

 

[대한응급의료학회 관계자는 「현행 업무 범위 제한은 변화하는 의료 환경과 모순들이 있다」며 「법 개정을 통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사와 간호사 측에서는 응급구조사의 잘못된 초기 조치가 환자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빠지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의료행위는 잘못 시행됐을 때 환자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다」면서 「응급구조사 개개인의 의학 지식 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응급구조는 외부의 의료 인력이 없는 응급한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 간호사처럼 업무에 대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의료행위가 기술적으로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대한간호사협회 측도 「전문성 수준에 따라 간호사도 단계가 나뉠 수 있는데, 응급구조사 단계에서는 업무를 더욱 명확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 개정 등을 위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지만, 직군 간 갈등이 예상돼 국회 안에서도 법 개정보다는 시행령에서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다소 넓히는 쪽으로 의견을 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앞선 글에서 나는 보건의료계열에서 자격·면허가 신분처럼 여겨진다고 기술하였다. 위의 기사가 관계자의 인터뷰를 얼마나 정확하게 옮겼는지 모르지만, 그 관계자의 발언에는 응급구조사가 의사나 간호사보다는 한 신분 아래라는 ‘깔봄’이 깔려있다. 환자의 입장에 대한 고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4년 내내 응급의료와 관련된 공부를 한 응급구조사가 4년 중 극히 일부의 시간만 응급의료 교육을 받은 간호사에 비해 응급처치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무엇에 근거한 판단일까? 의사면 누구나 응급환자에게 필요한 처치를 ‘잘못 시행’하지 않는다는 판단의 근거는 뭘까? OECD 국가 중, 인구 당 의사 수가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119구급차를 타고 환자를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비위관 삽입, 골강 내 주입, 경정맥 주입, 도뇨관 삽입, 흉부 X-ray 판독, 뇌 CT 판독, 동정맥검체 분석,..’ 적정한 임상 경험과 교육수료가 검증되면 토론토의 응급구조사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나는 일방적으로 응급구조사에게 많은 행위를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행위의 위험성과 숙련성에 의한 안전성을 비교해 우리나라 의료여건에 맞도록 타당한 업무 범위와 그 업무를 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업무 영역의 다툼을 떠나 환자의 편익을 목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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